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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을 잠시 끄다"… 봉화 누정, AI 시대의 '디지털 디톡스' 성지로

등록일 2026년05월21일 11시45분

_ 초거대 AI와 스마트폰의 24시간 자극 속 '연결되지 않을 권리' 갈망하는 현대인

_ 석천정사 '도깨비 퇴치'부터 청암정 '거북이 공존'까지 선조들의 흥미로운 서사

_ 정보 과부하 씻어내는 한수정의 맑은 바람봉화군 "진정한 ''를 만나는 시간"

 

거북 형상의 암반 위에 자리한 청암정 전경. 사진=봉화군 제공 거북 형상의 암반 위에 자리한 청암정 전경. 사진=봉화군 제공

 

[봉화(경북)=더피플매거진] 0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에서 초거대 인공지능(AI)이 쉴 새 없이 정답을 제시하고, 스마트폰 알림이 24시간 쏟아지는 시대. 역설적으로 가장 첨단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사이에서 이른바 '연결되지 않을 권리''디지털 디톡스'를 향한 갈망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고즈넉한 누정(樓亭)들이 정답 없는 자연 속 사색의 공간으로 재조명되며, 일상에 지친 이들의 새로운 힐링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봉화의 누정은 단순한 낡은 목조건물이 아니라, 세속의 잡념(디지털 소음)을 물리치고 본연의 자아를 찾으려 했던 선조들의 치열한 서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도깨비 장난도 멈추게 한 몰입, 석천정사의 청하동천

명승으로 지정된 석천계곡에 자리한 석천정사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전해진다. 과거 선비들이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할 때, 밤마다 도깨비들이 몰려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공부를 방해했다는 기록이다. 이는 마치 오늘날 현대인의 집중력을 끊임없이 흩트려놓는 '스마트폰 알림'과도 흡사하다.

 

이를 견디다 못한 권두응(1656~1732)은 계곡 입구 바위에 청하동천(靑霞洞天,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글자를 힘차게 새겨 넣었다. 신선의 권위로 도깨비(잡념)를 물리치겠다는 이 단호한 처방은, 디지털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엄격히 분리하고 깊은 몰입(Deep Work)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했던 선조들만의 확고한 '디톡스' 현장이었다.

 

거북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공존, 청암정 마루방

닭실마을에 위치한 청암정에는 오직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일화가 담겨 있다.

 

1526년 건립 당시, 원래 청암정은 여느 정자처럼 따뜻한 구들을 놓은 ''이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거북 형상의 암반 위에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의 등에 불을 놓는 것과 같다"는 조언을 들은 선조들은, 과감히 구들을 뜯어내고 차가운 마루방으로 전면 개조했다.

 

추위를 견디더라도 자연(거북 바위)과의 공존을 선택한 이 결단은, 데이터의 처리 속도와 효율성만을 따지는 AI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 존중과 공감의 가치를 되묻게 한다. 연못을 조성해 거북에게 물을 내어준 청암정의 고즈넉한 풍경은 그 자체로 완벽한 휴식을 선사한다.

 

과열된 일상을 식히는 보물, 한수정의 찬물 한 그릇

춘양면에 자리한 보물 한수정(寒水亭)은 그 이름부터가 완벽한 디톡스를 제안하는 공간이다. ‘찬물처럼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넘쳐나는 정보 과부하로 열이 오른 현대인의 뇌를 시원하게 식혀주기에 제격이다.

 

방문객들은 단순히 건물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400년 된 느티나무 아래 돌다리를 건너며 와룡연(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된다. 이는 디지털 세상에서 파편화된 자아를 다시 결합하는 정화의 의식과도 같다. 특히 한수정 특유의 T자형 구조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바람길은, 인공적인 에어컨 바람에 익숙해진 일상에 잊고 있던 자연의 리듬을 되찾아준다.

 

봉화군 관계자는 "AI가 우리 삶의 편의를 제공한다면, 봉화의 누정은 우리 삶의 의미를 채워주는 치유의 공간"이라며 "이번 주말, 스마트폰 전원을 잠시 끄고 도깨비가 사라진 석천계곡과 거북이가 쉬어가는 청암정, 그리고 마음을 씻어내는 한수정에서 진정한 ''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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