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조선 제일 한우!’
발로 뛰는 김종선 대표를 만나다.
이 지면을 통해 여러 기관 단체장을 만나면서 지역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경제인을 만났으면 하는 생각을 내내 했었다. 기자이자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는 필자가 도동서원으로 출근할 때마다 이 회사 앞을 지나가게 된다.
‘조선 제일 한우’
‘제일’이라는 간판을 걸고 당당하게 사업하는 분이 어떤 분일까 궁금했었다. 사무실 직원에게 대표와 연결해 달라고 두 번이나 부탁했지만 성사되지 않았고 삼시세판이라는 말이 있듯 세 번째 만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대표실이라는 문패를 보고 들어가니 젊은 사람이 반긴다. 대표라고 믿기엔 너무 젊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대표가 맞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이 회사의 김종선 대표(37)라며 명함을 건넨다. 여직원에게 두 번이나 대표와의 만남을 주선했지만 번번이 출장가고 안 계시다는 말에 직접 만나 뵙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젊은 패기로 발로 뛰어다니다보니 만나기가 그리 어려웠던 것 같다. 그를 통해 어떻게 해서 육가공에 뛰어들었는지 들어보기로 했다.
이 일에 종사하게 된 계기라면?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으로 4년 내내 축산연구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하지만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대학원이 아닌 취업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사료회사인 Y제분에 취업하였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을 갖고 입사했는데 근로자들의 복지문제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원하는 곳을 찾기 위해 짧게나마 방황도 했다. 그러던 중, 지인인 P씨가 육가공 공장을 설립한다며 같이 하자고 했다. 일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일이 하고 싶었고 열심히 했다. 그러다보니 시너지가 나타났고 하루에 소 10두를 가공하다가 20두로 늘어날 정도로 바빠졌다. 일을 해도 힘든 줄 몰랐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몰랐다. 사업이 번창하여 도축장 내에 공장 하나를 더 설립하여 1공장 책임자가 되었다. 하지만 오래갈 수 없었다. 공장 건립에다 가공할 소의 두수가 늘어나고 직원 수도 늘어나면서 자금회전이 원활하지 않아 부도가 났다. 한창 일할 젊은 나이에, 신명나게 일하다가 하루아침에 할 일이 없어지니 무기력해졌다.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도 중요하지만 인간관계도 사업의 밑천이 될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사람이 재산이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 거래를 하면서 알게 된 K사장과 동업으로 ㈜‘천하제일한우’라는 농업회사 법인을 만들었다. 법인체를 만들어 안정화되면서 자가 공장도 짓고 기존에 ‘천하제일한우’가 있던 임대공장에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지금의 농업 법인주식회사 ‘조선제일한우’를 설립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회사를 소개한다면?
▶‘조선제일한우’는 육가공 유통업체다. 우리 회사에서 분야별로 가공하여 유통하는데 시작단계라 직원은 그리 많지 않다. 관리 및 영업직원이 6명, 생산 담당 직원이 10명, 품질관리 및 출고 4명, 배송 2명으로 총 22명의 직원과 함께 ‘해보자’라는 사훈을 걸고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육류는 도축장이나 경매장에서 도축되어 있는 한우 거세지육을 육가공공장으로 가져와 지육에서 발골작업을 하고 제품화하기 위해 지방을 손질하여 등심, 안심, 채끝, 짝갈비, 특수부위 등 구이용과 양지, 사태, 홍두깨, 우둔 등 국거리와 육회용으로 구분한다.
이를 한우 부분육이라고 하며 등급별 33개의 부위로 분할하여 제품화한 후, 전국각지로 유통한다. 지금은 시작하는 단계라 하루에 10여두를 작업하지만 3년 이내에 50두를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가 공장과 자가 농장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력확보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이 일을 하면서 보람 있었거나 힘들었던 점이라면?
▶여러 번 입·퇴사를 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처럼 회사가 나와 맞지 않아 퇴사를 했지만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았다. 젊은 사람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주위의 시선도 부담스러웠고 나 스스로 자괴감도 들었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묵묵히 힘이 되어주셨다. 물론 형편이 여의치 않아 사업자금을 넉넉하게 지원해줄 만큼은 아니지만 한우사육을 40년 가까이 해오시다 보니 농가 직거래하는 방법이나 생우(살아있는 소)를 보는 방법 등, 아버지의 노하우나 지인들을 소개해주셨다.
사훈이 “해보자”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춘다고 했듯이 젊은 사람이 성실하게 일을 잘 한다는 말을 들을 때면 힘이 난다. 앞길이 장미꽃을 뿌려놓은 탄탄대로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지금처럼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하면 반드시 그런 웃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의 비전과 계획이라면?
▶먹거리를 다루는 회사는 위생에 철두철미해야 한다. 그래서 ‘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이라고 사전에 위해(危害)를 차단하는 haccp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입·퇴사를 반복하면서 경영인이 된다면 근로자들의 복지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여러 번 옮겨 다녔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 입사할 때와 현장에서의 대우가 달랐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100% 만족하지는 못하겠지만 근로자였을 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근무환경이나 급여 및 복지에 힘을 쏟고 있다. 사람, 즉 직원들은 나의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을 믿고 그들 또한 나를 믿어야 장거리 달리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젊어서 그런지 하고 싶은 일이 참 많다. 지금은 10여두를 가공하지만 50두를 목표로 하고 있다. 실패를 해본 경험이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을 기한다. 무리하게 확장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걸음씩 나아가 가공공장도 짓고, 자가 농장도 마련할 생각이다. 지금은 1차 가공까지 하지만 2차 가공까지 할 수 있도록 규모를 키우고 싶은 꿈이 있다.
김종선 대표는 한우는 특성상 신토불이로 최고의 자부심이 있는 육우이기에 앞으로 고급화가 되면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먹거리이기에 없어질 수도 없고, 일본의 핵 오염수 방류로 육류 소비가 훨씬 더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젊은 사람답게 2~3년 이내에 자가 공장을 지으려는 목표를 두고 있으며, 사육에서 유통까지 일괄적으로 할 수 있는 육가공공장이 되기 위해 한발씩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의 눈을 통해 읽었다.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