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현령(馬峴嶺)
마현령(馬峴嶺)은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와 달성군 하빈면 현내리를 연결하는 고개 이름이다. 마현령이란 지명은 1750년대 초반에 제작된 『해동지도(海東地圖)』에 나타난다. 마현령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구와 성주간 주된 통로로 교통의 요지였다. 지금은 다사읍 이천리(伊川里)와 하빈면 현내리(縣內里)의 첫 글자를 따서 이현(伊縣)고개라 부른다.
『해동지도(海東地圖)』경상도(慶尙道) 대구부(大丘府) 산천조(山川條)에 "能城峴馬峴嶺俱險?要衝(능성현마현령구험액요충)"라 기록되어 있다. 이를 풀이하면, "마현령 고개길은 능성현 고갯길과 함께 험준하고 막히고 좁으나 요긴한 통로다"라는 뜻이다. 마현령은 다사·하빈지역의 동서로 연결된 마천산(馬川山) 허리부분으로 남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이다. 『해동지도(海東地圖)』는 관찬(官撰) 지도집이며, 국가 차원에서 제작된 방대한 분량의 지도책으로 지도에 지리지를 결합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마현령에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월곡 우배선(月谷 禹拜善, 1569~1621) 선생이 이끄는 의병이 왜군을 상대로 싸운 기록이 있다. 월곡선생의 유문(遺文)과 유사(遺事)를 모아서 엮은『월곡선생실기(月谷先生實記)』에 복병군의 사실을 기록한 문서인「복병군사실상(伏兵軍事實狀) 」에 자세히 나온다. 월곡 선생은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사성(師聖) 호는 월곡(月谷)이며, 화원현(花園縣) 월촌리(月村里)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하여 화원, 다사 등지에서 승전한 공을 인정받아 합천군수·금산군수·낙안군수 등을 지냈다. 선생은 선조37년(1604)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으로 책록되었다.
월곡 선생의「복병군사실상(伏兵軍事實狀) 」을 보면, 월곡 선생이 의병들과 대구에서 성주로 이동을 하기 위해 다사(多斯)의 달천진(達川津)을 도강할 즈음 추격한 왜군과 좇고 좇기는 싸움이 벌어졌다. 의병을 뒤따라 강을 건너는 왜군을 향해 활과 총통(銃筒)을 쏘아 뒷걸음쳐 물러서게 하였다. 다음날 아침 왜군은 기병과 보병을 구름처럼 몰고 다시 금호강 도강을 시도하였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위기감을 느낀 의병 일부는 박곡(朴谷)의 앞산으로 올라가고 말을 탄 기병은 이천(伊川)을 지나 마현령(馬峴嶺)으로 피하였다. 마현령까지 좇아온 왜군과 싸우다 왜군 2명이 죽고, 의병은 4명이 전사하였다.
현재 마현령 길은 1992년 1월에 착공하여 1994년 12월에 완공한 폭 8m 총연장 2,970m의 포장도로로 급경사와 급커브가 많은 길이다. 옛 길이 좁고 엄준했음을 알 수가 있다. 고갯길 정상에는 국회의원을 지낸 취산 구자춘(翠山 具滋春, 1932~1996) 선생의 감사비(感謝碑)가 세워져 있으며, 그 외에 마현령에는 마천원(馬川院) 터, 열부창녕성씨정려각(烈婦昌寧成氏旌閭閣), 마천산자연휴양림, (구) 다사면사무소 터 등이 있다. 고개 넘어 현내리에는 하빈면사무소가 있다.
대구시에는 마현령과 팔조령 등이 있다. 팔조령(八助嶺)은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팔조령은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주된 통로로 교통의 요지였다. 팔조령을 양쪽 마을 이름 첫 글자를 따서 삼팔고개라 부르지 않고 그냥 "팔조령"이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는 마현령(馬峴嶺)을 마현령이라 하지 않고 이현고개가 한다. 우리들의 선조들이 명명(命名)한 원래 이름 "마현령"을 되찾아 고갯길에 표지석을 세워 "마현령"을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