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 만보(漫步)] 손톱 밑의 가시
하 종 혁
“아뇨, 수술이 아니라 시술이라니까요.”
구십 풍상을 겪어 온 어머니는 아들의 간곡한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당신 말씀만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 노모를 안심시키자면 평온한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 외에 달리 뭔 수가 있겠는가. 편찮은 속내를 잠시 접어 두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뇌고야 당신은 겨우 물러앉았다.
척추관이 좁아져 신경을 건드리는 증세가 심해졌다. 철봉에 매달리기도 하고, ‘거꾸리’라는 기구에 몸을 의지하며 그럭저럭 견뎌 온 세월이 족히 십 년은 된 것 같다. 오래 견디다 찾은 병원이라 무슨 말을 듣든지 담담하게 받아들이리라 다짐했다. 의사는 나이 탓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시술 후 상당 기간 부지런히 재활해야 하고, 예후도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을 거라는 주치의의 말이 아주 크게 들렸다. 더구나 오랫동안 즐기던 등산은 아예 접는 게 나을 거라는 단호한 말에 그동안 나를 지탱하던 큰 기둥 하나가 무너지는 듯했다.
수필가_하종혁
며칠이 지났다. 얼근하게 되어 귀가한 아들과 아내의 수런거리는 소리가 밤이 늦도록 이어졌다. 녀석은 같은 소리를 지겹게 되뇌고 있었다. 안 그래도 마음이 울적하던 형편이라 얼른 자라고 큰소리를 냈더니 어허, 녀석 보게나. 두서도 없이 훌쩍이는 게 아닌가. 하기야 학업과 일을 병행하고 있으니 딴은 걱정이 없지는 않을 테지. 그래도 그렇지. 엔간하면 병원 신세 지지 않으려고 고집스레 사는 아비가 풀이 죽어 들락거리는 모습은 안중에도 없고, 제 하소연만 잔뜩 늘어놓을 게 뭐람. 북받치는 화를 겨우 누르고 자리에 누웠다.
불똥이 애먼 곳으로 튀었다. 가까스로 아들을 재워 놓고 들어온 아내가 낮은 소리로 꿍얼거린다. 술 먹은 아이 말을 못 들은 척하면 그만인데, 그게 뭐 그리 힘드냐는 거라. 틀린 말은 아닐 테지만, 기어이 폭발하고 말았다. 당신이 늘 애 편만 드니 저 모양 아니냐, 다 큰 자식이 아비 생각은 눈곱만도 없는데 누가 누구를 위로한단 말이여. 지금 내가 저를 거들떠볼 계제냐고…. 여태 듣지 못하던 말들이 내 입에서 마구 쏟아졌다. 내 스스로가 놀랄 지경이라 아내는 말문을 닫았다. 자식을 두고 험한 말을 뱉고 있는 모습이라니…. 결국 그날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병원에 다닌 지도 보름이 지났다. 사나흘만 지나도 좋아지는 경우가 가끔은 있다던 의사의 말을 떠올리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아내는 대개 달포는 지나야 제대로 효과를 볼 거라 하지 않더냐며 진득하게 기다리란다. 누구든 남의 큰일도 하찮게 여기면서도, 자기가 겪은 작은 일은 뼈저리게 느끼기 쉽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남의 고통을 제 아픔처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남의 심한 고뿔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라는 옛말도 있지 않나.
몇 해 전이었다. 아내는 난데없이 귀에서 웅웅대는 소리가 난다고 했다. 바로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대수롭잖게 말하는 바람에 제때 대처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뒤늦게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지만 한번 손상된 청신경은 돌이킬 수 없었다. 평생토록 이명과 더불어 살게 된 아내는 걸핏하면 짜증을 부린다. 그런 아내를 상대로 나는 나대로 툭하면 신경질이다. 텔레비전 음량이 너무 높지 않아? 말소리를 좀 낮춰 보게.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하게 할 거야? 등등…. 이내 무심코 한 말이라며 돌아서서 뒤통수를 치면서도 제도루묵이 되는 일상은 오늘도 하염없이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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