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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대(爛柯臺)

등록일 2014년04월08일 16시19분
난가대(爛柯臺)
 난가대(爛柯臺)는 고운 최치원(857~?)선생이 머물렀던 곳으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선사 금호강변에 있는 명승지이다. 난가대의 원형은 금호선사선유도(琴湖仙査船遊圖)에 잘 나타나 있는데, 강에 인접한 난가대의 기암절벽은 도로 개설로 사라졌지만 금호강과 난가대 일대의 풍경은 벚꽃길이 조성되면서 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색이 없다.
 난가대의 존재는 조선시대 지리서인 『대구읍지』 『여지도서』에서 확인이 되며, ‘난가대’란 제목으로 시 3편이 전한다. 조선후기 대구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낙재 서사원(樂齋 徐思遠, 1550~1615) 선생과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1584년 문과 급제하여 부제학·대제학·좌찬성 등을 역임한 오봉 이호민(五峯 李好閔, 1553~1634) 선생이 "난가대" 시 1편식을 남겼다. 먼저 오봉 선생의 시를 보면,
 
  客過琴湖路(객과금호로): 나그네 금호강 길 지나가다가
  春深處士家(춘심처사가): 봄 깊은 서처사(徐處士) 집 찾아들었네.
  雁迎芳草逕(안영방초경): 아들 형제 방초(芳草) 길에 마중 나오고
  梅入小窓紗(매입소창사): 매화같은 고운 딸 규방으로 들어가더라.
  白首微人事(백수미인사): 늙은이는 세상사를 조심하라 하건만
  靑年玩物華(청년완물화): 젊은이는 화려한 일 좋아하누나.
  應知歸洛後(응지귀낙후): 서처사(徐處士) 대구로 돌아온 뒤에
  夜夜夢南涯(야야몽남애): 밤마다 신선을 꿈꾼 것을 알겠다.
 
 시에 등장하는 서처사(徐處士)는 낙재 서사원 선생을 지칭하며, 당시 낙재 선생은 난가대 안쪽 이강서원(伊江書院)이 있는 곳에 거주하였다. 오봉선생의 시에 낙재 선생과 친분관계가 잘 나타나 있어 흥미롭다. 낙재 선생은 다음의 시에서 난가대에 얽힌 이야기와 선비의 풍류를 노래하고 있다.
 
  ?山九曲淸遊遠(민산구곡청유원): 민산 구곡 맑은 놀이 먼 옛적의 일
  千載源遊墮渺茫(천재원유타묘망): 천 년 전의 뱃놀이는 아득하게 되었네.
  一葉共登南北友(일엽공등남북우): 일엽편주에 여러 벗과 함께 올라서
  長吟同入水雲鄕(장음동입수운향): 길게 시 읊으며 물과 구름 속으로 들어가네.
  酒因墮量無多醉(주인타량무다취): 술은 알맞게 마셔 취하지 말 것이요
  詩或沈思犯令長(시혹심사범령장): 시는 너무 깊이 생각하면 좋은 글이 아니 되네
  日暮爛柯臺上宿(일모난가대상숙): 해 저물어 난가대에 올라 잠드니
  道風仙夢此宵長(도풍선몽차소장): 도사의 풍모 신선의 꿈에 이 밤이 깊도다.
 
 다사지역 금호강 문화를 노래한 서호병십곡(西湖屛 十曲)에서도 ‘난가대’란 제목으로 시 1편이 전한다. 작자는 작품에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이천 선사에 머문 옛 사실과 가야산에서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고운 선생을 그리워하고 있다. 고운 선생이 머문 다사지역의 난가대(爛柯臺)·선사암(仙?菴)·세연지(洗硯池)·무릉교(武陵橋)는 대구지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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