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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서원과 금호강 뱃놀이

등록일 2013년03월18일 13시17분

이강서원과 금호강 뱃놀이

 다사초등학교에서 선사 삼거리를 조금 지나 금호강물이 휘감는 끝쪽 좌측 모퉁이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이강서원을 만난다. 여기가 선사암이 있었고, 고운 최치원 선생이  산수가 빼어나 학문을 가르치고 학처럼 살고 가셨다는 구지골이다. 현재의 정확한 위치는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 277번지이다.
 이강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을 지낸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1550∼1615) 선생을 모시기 위해, 조선 1639년(인조 17년)에 향토 유림에서 세운 것이다. 달성서씨(達城徐氏)인 낙재 선생은 대학자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으로부터 학문을 배우고, 당시 유명한 선비였던 장현광(張顯光), 정경세(鄭經世) 등과 교류한 바 있는 우리 다사지역의 대표적인 선비 중 한 분이다.
 강당인 완락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자연석 허튼층 쌓기한 다소 높은 기단 위에 중당협실형의 평면을 구성하였다. 어칸과 좌협칸을 통하여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으로 온돌방 1칸(대구읍지의 기록에 의하면 義齋)을 설치하고 우측으로 2칸 온돌방(敬齋)을 두었다. 그리고 온돌방 앞쪽에 퇴칸을 두어 마루와 연결하고 마루와 방 사이에는 4분합 들어열개문을 달았다. 마루 뒤편에 퇴를 달고 온돌방 뒤편에도 퇴와 동일한 폭으로 벽장을 설치하였다. 정면에만 원기둥을 사용하였고 무익공 소로수장집이며 3량가구이다.
 부강정(浮江亭:신라시대 죽곡리에 있었던 정자이름)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의 중류지대는 한강 정구(鄭逑), 여헌 장현광(張顯光). 낙재 서사원(徐思遠) 을 비롯한 문인들이 수시로 선유(船遊`뱃놀이)를 즐기는 공간이었다.
 놀이 때마다 적게는 20여 명, 많게는 70~80명에 이르는 선비들이 참여했던 선유놀이는 누군가가 주축이 되어 스승과 벗들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또 주어진 운(韻)자에 따라 서로 돌아가며 시를 짓고, 읊기도 하며 즐겼다.
 감호집에 따르면 낙재 서사원(徐思遠)이 1601년(선조34) 3월 23일(음력) 금호강 선사(仙査)에서 낙동강 부강정에 이르기까지의 뱃놀이인 ‘금호선사선유(琴湖仙査船遊)’의 주인공이고 시회를 열어 참석한 참가한 분들의 인적사항과 분운분자, 작시내용과 그 시절의 분위기를 풍경화처럼 세밀히 묘사해 내고 있다. 낙재 선생은 그해 2월에 자신의 거처인 금호강 이천에 완락재(玩樂齋)를 지어 낙성했다.
 낙재가 만년(52세)에 세운 완락재는 이후 달성을 포함한 지역에서의 특별한 강학처이자 낙재학(樂齋學)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는다.
낙재 선생이 금호강 이천의 완락재에서 공부하는 기쁨과 후학들을 가르치는 재미에 흠뻑 취해 있던 시절 장현광을 비롯한 선비들이 찾아왔다. 이들 일행의 방문은 완락재의 낙성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완락재 아래로 흐르는 춘삼월 봄날의 강물은 뱃놀이의 욕구를 한없이 자극했다. 조금 전까지 내리던 가랑비도 어느새 뚝 그치고 하늘은 쾌청하기 그지없었다. 선비들의 마음은 더욱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배가 강나루에 도착하자마자 이번 선유의 주인인 서사원을 비롯해  선비 23명이 올라탔다.

10리에 펼쳐진 거울처럼 맑고 투명한 강물과 비단병풍을 두러친 듯하여 인간세상 백년에 한번 만날 좋은 놀이였다고 표현한다.
층층 기암절벽과 멀리보이는 모래밭은 화필이 아니면 형상할 수 없었다.
 이들 일행은 땅거미가 질 무렵 하루 묵을 요량으로 부강정에 들렀다. 부강정의 방이 넉넉하지 못해 일부는 가까운 지인들의 집에 묵었다. 다음날 아침에 부강정에서 다시 만난 선비들은 새벽부터 내린 비로 적삼이랑 옷이 눅눅해졌지만 뱃놀이만큼은 그만둘 수가 없었다. 다시 배에 올랐다.
 명색이 내노라 하는 선비들이 아회(雅會)에서 시가 빠질 리 없었고 이왕이면 가장 흠모하는 주자의 어정시를 분운(分韻)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시의 총자수가 20자이고, 참석자 23명 가운데 곽대덕, 서항, 정정 등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운자를 배당받았다. 서로 다투듯 시를 짓기 시작한 가운데 여대로는 하목정 주인인 이종문이 시를 짓지 못해 벌주를 마셨다.
선유에 참여한 23명의 선비들 가운데 52세로 가장 나이가 많은 서사원이 첫 운자인 ‘출"(出)자로 시를 짓기 시작했다.

 봄 저물자 하도야 안타까워서/노을가득 싣고야 뱃놀이 가네/사방에서 뜻있는 이 모여들어/운무도 활짝 개니 내맘 기뻐라/이물을 거슬러 올라가는/윗물이 깊고도 물살 빠르네/주변 빛은 아름답게 고이 빛나고/광풍이 숲 그늘을 흔들어대네/한들한들 구름헤쳐 은하를 넘어/똑바로 월궁을 찾아 들제/청풍이 겨드랑을 스쳐/흠뻑 취해 신선 끼고 창공을 나는 듯하구나

이 선유놀이는 완락재의 낙성을 기념하고 대자연 속에서 평소 친한 벗들을 만나 정담을 나누며 소통하는 데 있었지 시를 잘 짓는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어 ‘학"(鶴)자 운을 받은 양졸재 정수도 금호범주분음의 시를 지어 구성지게 읊었다.

 꽃피는 강가에 풍경이 아름답고/노니는 백조깃은 더 한층 희구나/복숭아 꽃잎은 강물 따라 더욱 붉고/늘어진 능수버들 강변 따라 푸르런데/자연의 천리를 군자들과 즐기지만/마음이 흔들릴까 젊은이들이 걱정하네/조용히 모신어른 그 말씀을 들으면서/술도 취하고 그 덕풍도 만끽하네/고상한 모임에 부평처럼 만났거늘/뒷날 다시 어떤 일로 상봉할꼬/석양빛 받으며 강바람은 부는데/조촐한 이 흥취야 그 어이 비속하랴

 ‘금호선사선유록’에 이름을 올린 23명의 선비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서사원과 21세인 박정효와 김극명의 나이차는 31세였다. 한마디로 세대를 초월한 소통과 화합의 모임을 했던 것이다.

장현광은 자신의 문집(旅軒集)을 통해 이날의 선유놀이에 대한 글을 남겨 놓고 있다.
 어제 유람한 일 곰곰이 생각하니/일은 지나갔는데 생각은 어이 길게 남았는가/ 젊은이 늙은이 수십명이/ 한 배 타고 취했지/ 바람따라 가는 대로 따라가니/ 갈수록 방향을 몰랐다오/ 아득하고 아득한 이 가운데의 즐거움/ 어찌 시 읊고 술마심에만 있겠는가/ 저녁에는 강가 마을에 유숙하니/ 배꽃 향기 멀리서 풍겨왔지/ 이번 선유놀이 길이 잊지 마소

 말끔히 단장된 금호강 주변을 생태관광지와 스토리텔링 관광지로 연계시키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생태관광에 덧붙여 금호강변에 산재한 알려지지 않은 옛 유적지를 발굴, 복원하는 일도 우리 달성군이 고민해야할 부분이다. 이렇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시설물에 스토리까지 덧입히면 부존 관광자원이 없는 대구에는 금상첨화다. 관광자원의 활용가치가 확 달라진다.
묻혀 있지만 숨겨진 보물을 찾듯 스토리텔링 관광자원화는 지금의 강정고령보 인근에 있었다는 정자 ‘부강정(浮江亭)’의 복원이 왜 필요한지는 앞의 문헌상에 나오는 자료들이 고증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금호강 뱃놀이 길은 수십년 만에 생명의 강으로 거듭나 금호강자전거길로 그 명성을 자리잡아 가고 있다. 학문을 숭상하고 충절의 얼이 깃든 금호강을 품고 있는 우리 다사 주민들에게는 혜택이고 축복이다. 삶의 질 향상은 물론 환경을 보호하고 감시하는 파수꾼 역할도 다사주민에게는 선택된 주인의식이다. 금호강의 활용가치와  생태와 역사관광지로의 개발도 우리 지역주민들이 참여해야 할 몫이다.

다사지역발전연구소 소장 정군표
경영학박사/관광경영.관광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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