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은 내 삶의 뿌리이자 어머니이지요
-달성 본토박이 김병용 달성군 노인회장으로부터 달성군의 상전벽해(桑田碧海)를 회고하다
달성군은 젊다. 국가공단, 테크노폴리스, 첨단산업단지, 달성산업단지 등 대구의 중추적 산업단지는 모두 달성군에 있다. 그래서 젊은이가 많다.
달성군은 100년의 역사가 있다. 1914년부터 이어온 100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달성 역사속에 주인공으로 추억의 한페이지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어르신이 많다.
달성군의 어르신인 김병용(79) 달성군 노인회장을 만나 과거 달성이 걸어온 길을 회고하며 추억을 들어본다. 김 노인회장은 그동안 마을이장, 새마을지도자, 학교 육성회장, 농협이사, 농협장 등 지역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많이 해 온 분이다. 예재호 달성군 노인대학장(전 달성중 교장)과 김태중 달성군 노인회 사무국장도 배석했다.

기자 : 먼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정정하신 모습으로 뵈니 기분이 좋습니다. 노인회장님의 고향이 어디며 달성군에 사신 지는 몇 년 째인지요?
김 회장 : 저는 한평생 동안 달성군에만 살아온 본토박이입니다. 달성군 냄새가 몸에 배어 있지요.(웃음) 제 고향은 논공읍인데 화원국민학교와 달성중학교를 나와서 계속 달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기자 : 회장님은 젊었을 때의 꿈은?
김 회장 : 어렸을 때는 교사가 꿈이었어요. 남을 가르치고 교육시키는게 보람되고 멋있게 보였어요. 지금은 비록 꿈과 다른 길을 가게 되어서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기자 : 이제 3월이면 달성군이 개청한 지 100주년이 됩니다. 소감은?
김 회장 :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춘궁기에는 보릿고개라 해서 지금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힘든 시기가 있었지요. 저희 동네에도 끼니를 걱정한 분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제개발을 통해 산업을 부흥시키고 발전시켜 배고파서 죽는 사람은 없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예전에 우리 달성군은 대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단했는데 벌써 100년이 되었다고 하니 감개무량합니다. 100년을 이어온 동안 달성은 제 삶의 뿌리이자 어머니 같은 존재였어요.
기자 : 과거 달성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에 남는 일은?
김 회장 : 어릴 적 논공에서 살 때는 비슬산에서 뛰어 놀던 기억이 새롭네요. 지금은 비슬산이 관광지로 개발되어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당시에는 이름 없는 보통 산이나 다름없었어요. 화원으로 이사 온 뒤로는 친구들과 낙동강변에서 소를 먹이며 씨름도 하고 추억거리가 많아요. 요즘 아이들은 상상을 못하죠. 화원읍 성산 2리 이장을 할 때는 녹색혁명이라고 하는 통일벼를 재배했는데 당시 경북도지사로 있던 구자춘씨가 저를 칭찬하고 일에 대한 추진력이 있다며 불도저다라고 했던 일도 기억나네요. 그리고, 현풍 시장과 화원 시장에 장이 서는 날이면 동네 축제였는데 그때의 아련한 추억이 그립습니다. 지금은 달성군에 공장과 아파트가 즐비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거의 논밭뿐이었어요. 그야말로 상전벽해고 격세지감이죠.
기자 : 달성군 노인회장으로서 노인정책은 잘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김 회장 : 현재 노인정책은 전국적으로 잘되고 있다고 봅니다. 대구 8개 노인지회 중에서 달성군 지회가 지원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데 달성군의 278개 경로당에 각각에 대한 김문오 군수의 관심에도 마음 든든합니다. 특히 노인들에 대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무척 기쁩니다.
기자 : 마지막 소망이 있다면요?
김 회장 : 현재 달성군 노인회가 노인복지회관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데 단독 사무실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3년 전에 박근혜 전 대표에게 특별교부세 10억원을 요청했는데 3개월 전에 지원을 받아 올해 드디어 착공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달성군 278개 경로당의 역사를 기록하는 백서를 꼭 만드는 것도 제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