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산(馬川山)
마천산(馬川山)은 다사읍과 하빈면의 전 지역에 걸쳐져 있으며, 두 지역을 지키는 산이다.
대구도시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문양역을 통하여 많은 등산객이 마천산을 찾고 있다.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편리한 교통, 향토적 서정을 간직한 시골풍경, 낙동강 금호강이 조망되는 아름다운 전망, 주변의 먹을거리, 높지 않은 산 높이와 여러 갈래로 연결된 아기자기하고 평탄한 등산로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찬산의 스토리나 문화유산을 알고 찾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하물며 우리지역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마천산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꽤 많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다사읍 · 하빈면 지역에 13개의 초·중·고등학교가 있는데, 어느 곳도 마천산을 가르치지 않으며, 학교교가에서도 마천산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리서인『신증동국여지승람』『경상도지리지』『여지도서』『대구읍지』에서는 마천산을 가르켜 다사읍 · 하빈면을 대표하는 명산이라 소개하고 있다. 마천산은 다른 이름으로 금성산(錦城山)이라 부르며, 우리 지역의 진산(鎭山)으로서 팔공산(八公山)에서 가산(架山)을 거쳐 뻗어 나온 산이라 설명하고 있다.
마천산은 특히 많은 이야기꺼리를 간직하고 있는 산이다. 신라고찰 선사암(仙楂菴) 절터에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난가대(爛柯臺) · 무릉교(武陵橋) · 세연지(洗硯池)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길 고개인 마천산 마현령(馬峴嶺)은 임진왜란 때 월곡(月谷) 우배선(禹拜善, 1569~1621) 의병장이 왜병과 전투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며,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이 마현령 고개를 넘어 하빈역(河濱驛)에서 시를 남기기도 했다. 1601년 봄 23인의 선비들이 모여 뱃놀이 한 기록인「금호선사선유도(琴湖仙査船遊圖)」전하는데 그 배경이 마천산 선사(仙査)이다.
빼어난 승경을 간직한 마천산은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이다. 참봉(參奉)을 지낸 임하(林下) 정사철(鄭師哲, 1530~1593)의 선사서당(仙槎書堂), 감역(監役)을 지낸 낙재(樂齋) 서사원(徐思遠, 1550~1615)의 선사재(仙査齋)와 이강서원(伊江書院), 마천산봉수대(馬川山烽燧臺), 국어학자 이윤재 묘소, 경상도관찰사 이단석(李端錫, 1625~1688)의 청백선정각(淸白善政閣), 효부성주이씨 비각(碑閣), 창녕성씨 정려각(旌閭閣) 등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마천산을 사랑하려면 알아야 되고, 알면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에 알지 못했던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일 것이다. 모르고 볼 때는 낯선 땅 같지만, 그 역사적 의미를 알고 보면 더욱더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것을 우리가 모른다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은 우리 지역에서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다사향토사연구회 최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