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빈면 묘골 순천박씨 충정공파 5월 정기 종친회
‘조상을 받들고 종친을 사랑하고 인재를 기르자!’
지난 13일 하빈면 묘골에는 순천박씨 충정공파 후손들이 매년 5월 둘째주 일요일의 정기 종친회를 가졌다. 하빈교 삼거리를 지나 부엉골 왼쪽길로 돌아들어가면 도시의 회색건물에 익숙한 우리에게 옛 조상의 전통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묘골 순천박씨 마을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전통 양반 촌락을 간직하고 있는 묘골에는 조선 시대 역사의 한 자락이 큰 배경으로 깔려있다. 세종대왕의 손자이자 문종의 아들인 단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있을 때, 왕의 숙부인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고 어린 조카, 단종을 영월 청령포에 유배하여 죽인다. 이 와중에 단종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복위를 꾀하다가 역모죄로 목숨을 잃은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을 사육신이라고 부른다. 사육신의 한분이신 박팽년 선생의 본관이 순천이다. 역모죄는 삼족을 멸하는데 박팽년 선생의 일가가 참화를 입게 되었고 선생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성주 이씨)의 친정이 이곳이었다. 그녀가 대구로 와서 관비로 있던 중 유복자를 낳게 되었다. 그 사내아이가 성종 때 박일산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벼슬을 하게 되었다. 박일산은 성종 10년(1479년) 묘골에 터전을 잡아 99칸의 종가 건물을 짓고 살았다. 묘골의 육신사는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현재의 묘골은 바로 박팽년과 그의 손자 박일산의 후손들이 모여 살아온 촌락인 것이다.

박종우 순천 박씨 종친회장은 “과거 농경사회에 여기 묘골에 우리 일가들이 모여 살았다. 그 시절에는 조상을 모시고 서로 돕고 지내며 전통을 지키며 살았다. 하지만 현대 사회로 접어들고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핵가족화가 되면서 우리의 뿌리, 우리의 조상에 대해 잊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우리 종친회는 1996년부터 매년 5월 둘째주를 고향 방문의 날로 정해 묘골을 찾기로 계획했다. 이날은 다함께 만나서 서로 안부도 묻고 묘골을 발전시킬 현안에 대해 논의도 하고 조상에 대해 알아가는 자리가 되도록 노력중이다. 우리의 후손들이 자신의 뿌리와 조상에 대해 잊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마을 입구에는 많은 차량들이 속속 들어왔고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어르신들은 지팡이를 짚고 육신사 계단을 올라 행사장에 모였다. 전통 가옥 마루에는 떡과 고기를 준비하며 오랜 만에 만난 친척끼리 안부를 묻고 재미난 얘기를 하는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윤연자(73) 어르신은 “웃대 대대로 조상을 모신 이곳을 찾으니 기쁘다. 집안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서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니 더 즐겁다”라며 환히 웃으셨다.
모든 것이 빨라지고 도시화와 빽빽한 고층 건물이 가득한 현실에서 이처럼 조상의 얼과 생활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된 묘골을 찾으니 우리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는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