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반전】
지폐에는 역사 인물만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고액권은 1914년에 발행된 조선은행권 100원이다. 당시 80kg짜리 쌀 11가마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2009년 6월 23일에 발행된 5만 원권은 1만 원권에 이어 36년 만에 발권된 최고액권이다. 5만 원권에는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의 초상이 들어가 있다. 신사임당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함께 모자(母子)가 화폐 모델로 등장하는 기록을 세웠다. 현모양처의 표상으로 불리는 신사임당은 뛰어난 화가이기도 했다. 5만 원권에 나오는 〈묵포도도(墨葡萄圖)〉와 〈초충도(草蟲圖)〉가 바로 그의 그림이다. 그가 그린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고 여름 볕에 말리는데 닭이 그림 속 풀벌레를 부리로 쪼아 그림이 뚫어질 뻔했다는 일화가 있다.
1950년 한국은행 설립 이후 나온 지폐 1호 인물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1875~1965)이다. 그해 8월 발행된 1000원권에 처음 등장해 1950년대 말까지 지폐 모델을 독점했다. 처음에는 지폐 왼쪽에 자리 잡았으나 1956년 발행한 500환권에서는 지폐 한가운데에 배치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지폐를 접다 보니 초상에 금이 가는 문제가 발생했다. 항간에는 “독재자를 욕되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초상을 중앙에 넣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결국 한국은행은 1958년 이승만의 초상화를 오른쪽으로 옮겼다. 500환권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사라졌다.
지폐 모델이 역사적인 인물로 바뀐 것은 1960년부터다. 세종대왕이 처음으로 1000환권(1960년 발행), 500환권(1961년 발행)에 등장했다. 그는 당시 최고액권인 1만 원권(1973년 발행) 모델로 선정됐다. 여기에 율곡 이이가 5000원권(1972년 발행), 충무공 이순신이 500원권(1973년 발행), 퇴계 이황이 1000원권(1975년 발행)의 지폐 모델로 합류했다.
1972년 5000원권을 제조할 때는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국내의 화폐 제작 기술이 부족해 영국의 토머스 델라루사에서 만든 지폐 원판을 들여왔다. 한국인 얼굴의 특징을 잘 몰랐던 그들은 이이의 코를 오똑하게 묘사하는 등 서구적인 얼굴로 표현했다. 그래서 5000원권은 ‘서양 율곡’이란 별칭을 얻었다. 5000원권은 1977년 우리 얼굴로 바뀐 신권이 발행되면서 1980년 12월 발행이 중단됐다.
1만 원권이 처음 발행된 것은 1973년이지만 이보다 앞서 1972년에도 1만 원권이 제작됐다. 지폐 앞면에 석굴암 본존석가여래좌상을, 뒷면에는 불국사 전경을 싣기로 결정하고 시쇄품을 만들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 발행 공고까지 마쳤다. 그러자 일부 기독교계가 특정 종교를 옹호한다며 크게 반발했다. 이 때문에 국내 최초의 1만 원권은 한 장도 인쇄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결국 이듬해인 1973년 앞면에 세종대왕 초상과 뒷면에 경복궁 근정전으로 도안을 바꿔 새로운 1만 원권이 제작됐다.
지폐는 역사 인물 일색이다? 꼭 그렇지 않다. 1962년에 발행된 100환권에는 무명의 인물이 등장했다. 우리나라 지폐에 등장한 첫 여성이다. 한복 차림의 어머니가 색동옷을 입은 아들과 저금통장을 들고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자상(母子像)은 일반인이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담 고 있다. 지폐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국민들에게 저축 심리를 고취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이 100환권 지폐는 제3차 화폐 개혁으로 발행이 중단되면서 국내 화폐 사상 최단기간(1962. 5.16~6.10) 유통 화폐로, 등장인물 역시 우리나라 화폐 역사상 가장 단명한 모델이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상상 또는 가상의 인물도 그려졌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에 발행된 100원권의 대흑천상(大黑天像)이 대표적인 예다. 대흑천은 불교에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수호하는 신이다. 삼보란 불교의 3가지 보배, 즉 부처님, 부처님 말씀, 부처님 제자를 말한다. 대흑천은 상상 속의 인물이다. 1915년에 발행한 1원권, 5원권, 10원권에 넣은 관을 쓴 긴 수염의 수노인(壽老人) 또한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 인물이 조선시대의 문장가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이라는 설도 있지만 뚜렷한 근거나 사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화폐에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을 굳이 꼽는다면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확한 발행 연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조선 후기의 별전(別錢)에 사랑을 나누는 남녀가 나온다. 별전은 공식적으로 유통된 화폐가 아니라 기념주화의 일종이다. 이 별전에는 성희를 즐기는 네 쌍의 모습이 대담하고 노골적으로 묘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