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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뜻이옵니다

등록일 2025년05월07일 18시01분
하늘의 뜻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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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후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면 고찰을 찾는다. 희한하게도 고찰에 들어서면 산만했던 마음이 고요히 정리된다. 의성에 자리한 만장사는 신라시대 창건으로 짐작하지만, 재건된 후의 역사는 길지 않다. 그럼에도 천년고찰의 고즈넉함이 물씬 풍겨서 좋다.

만장사 입구에 들어서면 안락루가 먼저 반긴다. 안락루에 오르면 이곳의 푸근한 인심이 전해진다. 찾아온 모든 분이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며 준비된 다과에 미소가 머문다. 정성스레 마련된 다과보다 더 멋진 건 풍경(風景)이다. 탁 트인 사방으로 파란 하늘이 내려앉고 녹음 짙은 산림이 푸른 바람 일으킨다. 바람 만난 풍경(風磬)소리가 고즈넉한 사찰을 깨운다.

​의성 화장산 중턱에 거대한 바위산이 있었어. 이곳은 산세가 수려하고 신묘한 기운이 흘렀어. 워낙 깊고 험한 곳이라 사람들이 감히 근접하지도 못했지.

어느 날, 한 고승이 이곳을 지나게 된 거야. 

“어허, 기이한 곳이로다. 용의 기운이 꿈틀대는군.” 

고승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살폈어. 이곳에 절을 세운다면 불법이 널리 퍼지고 많은 중생이 구원받을 수 있을 것 같았지.

“오호, 저 깎아지른 바위를 어찌 깨부순담”

고승은 깊이 고뇌하다가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어. 웬일이니. 삼칠일이 되는 날 밤이었어. 

“우르르 쾅쾅쾅”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우레같은 천둥에 번개가 천지를 울렸어. 세상이 깨부숴지는 줄 알았대. 번개가 바위산을 내리쳐 바위가 산산조각 나서 흩어진 거야. 이 광경을 멀리서 보고 놀란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어.

“스님, 어찌 된 일입니까?”

“이곳에 절을 세워 불법을 펼치라는 하늘의 계시라네. 그리하면 이 땅에 평온이 이어질 것이네.”

노승의 말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힘을 모아 절을 짓기 시작했지. 깨어진 바위가 천지사방에 흩어졌으니 돌산이잖아. 험악한 돌산에 절을 짓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사람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는 거야. 참 얄궂은 일이지. 전해진 말로는 그 또한 신령한 기운이 흐르는 곳이어서 그런 거라고 하더군.

하늘이 터준 땅에 절이 완성되었어. 신령한 기운이 만방에 뻗쳤는지 사람들이 몰려들었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기적 같은 체험을 했대. 누군가는 오래 묵은 병이 나았고, 누군가는 귀한 아기를 얻기도 했다는군.

오랜 세월, 이 땅의 사람들은 신령한 기운 받으며 평온하게 잘 살았대

​만장사 경내에서 둘러보면 군데군데 박혀있는 바위를 볼 수 있다. 혹여, 오래전 하늘이 깨부순 그 바위의 흔적이 아닌가 하여 쓰다듬어 본다. 신령한 기운이 몸으로 이어지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대웅전에 모신 석조여래좌상 앞이다. 수백 년 세월 동안 흙 속에 묻혀 있었음에도 온전하게 보존된 게 신기하다. 나도 모르게 머리 조아려 삼배 올리고 조신하게 앉는다. 굽어보는 석조여래좌상 표정 속 미소가 온화하게 가슴으로 들어온다. 마음속에 갈퀴가 생겨 가시처럼 날이 선 날, 이곳을 찾으면 어떨까. 부드러운 저 미소가 날 선 마음을 어루만져 고요하고 평안하게 해 줄 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대웅전을 나와 다시 안락루에 오른다. 동서남북이 확 트인 전망 속으로 오래전 이곳을 찾았던 이들의 숨결이 다가온다. 수많은 사연을 안고 이곳을 찾았으렷다. 대웅전 앞 삼층석탑을 돌며 부모님의 만수무강을 비는 이도 있었겠다. 나도 그의 뒤를 따라 탑돌이 한다.

​“찰랑찰랑, 댕그르르”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풍경소리, 그 맑고도 깊은 울림은 마치 마음속 번뇌를 하나하나 씻어내는 듯하다. 바람이 지나가면 소리는 사라질지언정 그 여운은 한참 동안 공기 속에 머무를 거다. 마치 오래전 기억의 파편처럼. 

“찰랑찰랑, 댕그르르”

​번잡한 생각들이 잠잠히 가라앉고 고요 속으로 빠져든 세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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