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는 살아있다
고분에서 가야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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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은 가야산과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을 끼고 있으며, 낙동강을 경계로 달성과 이웃하고 있다.
고령은 삼국시대 이전인 삼한 시대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고대국가연맹체의 하나인 변한에 속했으며, 고령 지역에 있던 소국(小國)의 이름은 반로국이었다. 이 반로국이 가라국, 대가야국, 오늘에 이르러 고령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으로 지금도 대가야의 명성은 살아있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고령 지산동 고분군과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 완전성을 인정받아 우리나라에서 16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가야 고분군은 가야 문명의 존재를 보여주며, 입지와 군집에서 탁월한 역사적 경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동북아시아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는 유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조선의 건국신화가 웅녀와 환웅 사이에 단군이 태어났듯, 대가야의 건국신화는 가야산신인 정견모주와 하늘신 사이에 두 형제가 태어났다. 그 가운데 형은 대가야의 시조인 이진아시왕이 되고 동생은 수로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령은 기원후 42년에 건국하여 562년 신라에 멸망하기까지 찬란한 가야문화의 꽃을 피웠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앞서 말한 유네스코에 등재된 지산동 고분군을 들 수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700여 기의 크고 작은 봉토분과 수만 기의 작은 무덤들이 분포하고 있다. 고분은 옛날 무덤 중 역사적 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있는 무덤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 무덤이 성행하기 이전까지의 무덤을 말한다.
지산동 고분을 통해 왕을 비롯한 다양한 신분층의 무덤을 볼 수 있으며, 당시 사람들의 장례문화뿐만 아니라 탁월한 경관과 우수한 토목 기술까지 볼 수 있다.
왕릉 전시관은 지산동 44호 고분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공간이다. 1977년에 발굴된 무덤으로 지름이 25m, 27m이며 높이가 6m가 되는 최대규모의 순장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순장은 죽은 주인공을 위해 살아있는 사람이나 동물을 강제로 죽여서 함께 매장하는 장례를 말하는데 신라, 고구려, 부여 등에도 이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야만의 독특한 문화라고는 할 수 없다.
순장이 성행했던 것은 현세의 생활이 사후에도 계속되는 내세사상에서 비롯되었으며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간의 신분 계층이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고분에서는 1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로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딸, 형제자매가 함께 순장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왕의 저승 생활을 위한 시종과 시녀, 호위무사, 창고지기, 마부, 일반 백성들이 순장되었음을 볼 수 있다.
고분 속에는 무덤의 주인공이 평소에 사용했거나 저승 생활에 필요한 껴묻거리로 불리는 부장품들을 같이 넣었는데 토기, 무기, 말갖춤, 장신구 등이 그것이다.
토기는 긴 사각형 구멍이 일렬로 뚫려 있으며, 목 부분이 부드럽게 좁아 들어 몸체와 S자형 곡선을 이루고, 목에는 여러 겹의 물결무늬가 있으며, 뚜껑은 단추나 젖꼭지 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기는 국가의 흥망을 결정짓는 전쟁에 사용되는 것이어서 첨단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권력의 상징물로도 이용되었다.
말갖춤을 통해 금이나 금동, 은으로 말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다.
금관은 신라의 금관이 出자 모양이라면 가야의 금관은 풀잎이나 광배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귀걸이는 중심고리가 가는 것이 특징이다.
대가야식 순장의 특징이라면 으뜸돌방, 딸린돌방, 순장돌방을 만들어 매장하는 방식인데 순장자에게 별도의 덧널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44호 고분은 가운데에 으뜸돌방, 남쪽과 서쪽에 2기의 딸린돌방, 32기의 순장 덧널을 배치한 고분으로 가야지역 최고의 위상을 자랑하는 왕릉이다.
73호 고분은 최초의 왕릉 고분으로 2007년에 발굴되었다. 한 사람의 왕을 위해 11명이 순장되었는데 왕의 비첩이나 시녀, 창고지기, 물품관리자 등이 매장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대가야박물관에서 순장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죽은 뒤에도 살아있을 때의 삶이 계속되는 계세사상으로 수많은 사람이 매장되는 장례문화를 보면서 그 시대인들의 삶을 유추할 수 있다.
고령에서는 매년 4월, 대가야 축제를 개최하여 1,500여 년 전의 대가야인들의 숨결을 지금도 느끼고 있다.
김미향 해설사는 “나라가 망하면 무덤과 토기도 바뀐다. 고령의 토기를 만들었던 장인정신은 청자, 분청사기, 백자로 이어지고, 철기는 철강 강국으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되었으며, 신라에 대한 저항정신은 의병으로 승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령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야금 또한 전통 국악기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고 말했다.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