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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여행] 남평문씨본리세거지

등록일 2011년09월25일 23시31분

[마을여행] 남평문씨본리세거지

평소 관광지도를 보면서 남평문씨본리세거지 라는 지명이 보일 때마다 궁금증이 일었다. ‘어떤 곳이기에 한 문중이 유명하게 소개되는 걸까?’하고 말이다. 그런 와중에 화원에 갈 일이 생겨서 때마침 그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다사에서 강창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서 조금 더 가니 언제 조성됐는지 산책로가 나왔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선선하더니 양쪽에 코스모스가 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벌은 꽃에 파묻혀 꿀을 모으느라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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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는 현대 문명에서 태어난 차들이 매연과 공해를, 오른쪽에는 태초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달성 습지에서 신선한 공기와 풀벌레 소리를 뿜어내고 있다. 산책로는 그 가운데서 중립이다. 다사에서 화원까지 쭉~

새로 개통된 다리 구라2교를 통해 손쉽게 화원으로 들어섰다. 강창교가 그랬듯이 앞으로 구라2교는 지역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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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화원시내를 거쳐 천내천 방향으로 쭉 가니 산이 나오고 뒤따라 시원한 공기가 흘러 내려와 몸을 씻겨준다. 조금 더 가니 저 멀리 한옥촌이 보인다. 거의 다 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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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있는 해설자와 동행해서 들어갔다. 근처엔 석탑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옛날 일연스님이 삼국유사의 뼈대를 완성한 인흥사였다. 후일 인흥사가 소실되고 나서 이 절터의 길지임을 알아본 남평 문씨에서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을 ‘본리’라는 지명 대신 인흥마을이라고도 부른다.

해설자는 함께 걷는 동안 남평 문씨가 어떻게 해서 이곳에 세거지를 형성하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역사를 설명해 주었다.

남평 문씨는 대대로 송경과 경기도 파주에서 살았는데 15세기 이후 문세근이 대구로 입향조가 되었다. 그의 9대손 문경호(1812~1874)가 이곳 인흥에 터를 잡은 뒤, 그의 후손이 100여 년간 집성촌을 완성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마을은 우물 정(井)자 형으로 9주택과 3곳의 공공장소(수봉정사, 광거당, 인수문고)로 이루어져 있다.

드디어 남평문씨본리세거지 앞에 당도했다. 대문이 두 군데 있는데 왼쪽으로 먼저 들어 가 봤다. 운치있는 소나무와 함께 정원이 나타났다. 수봉정사(수백당)는 문중 자제들의 배움터이자 학문을 논하던 곳이다. 문경호의 증손자인 수봉 문영박(1880~1930)의 호를 따 자손이 그를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 문영박은 광거당 내, 일제교육을 피하고 자제 교육을 위해 사립학교이자 도서관인 만권당을 설치하고 현재의 마을 모습을 완성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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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쪽문을 통해 들어가보니 여러 문고가 나왔다. 그 중 인수문고는 광거당의 만권당 장서와 수봉정사의 전적을 일원화하여 8,500여 고서를 보유하고 있는데 총 2만 권이 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문중문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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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봉정사로 돌아 나와 뒷문 오른쪽으로 광거당을 향했다. 토속적인 흙담이 반겨준다. 하지만 뭔가 복도식으로 일자형이다. 마을을 지을 때 정전법(井)으로 나눠서 그렇다. 그리고 옛날 담 치곤 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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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자가 마을 전체가 보이는 곳이 있다면서 광거당 뒤쪽 언덕으로 안내했다. 세 군데 공공장소(수봉정사, 인수문고, 광거당)는 방문할 수 있지만, 나머지 아홉 군데 저택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어서 들어가지 못한다. 이렇게라도 바라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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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거당으로 들어서면 자신도 모르게 웃음꽃이 핀다.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는 담 때문이다. 기와로 꽃 모양을 해 놨다. (나는 이것을 꽃담이라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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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담은 대문에서 광거당이 바로 보이지 않도록 하면서도 방문객은 꽃 문양을 보며 잠시 멈춰 서고.. 주인은 정리할 시간이 생기니 참 운치가 있으면서도 지혜롭지 않은가.


꽃담을 살짝 비껴서니 광거당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멋지다. 1910년에 세워진 광거당은 만 권의 전적을 소장하여 전국의 문인이 모여 책을 보기도 하고 시국을 걱정하며 토론하는 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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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루에 올라서서 주변을 바라보니 곳곳의 구부러진 나무들이 병풍이 되어주고, 남쪽에는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는 가운데 정면으로 먼 산 경치 또한 훌륭하니 올라간 발걸음 내려올 줄 모르겠더라. 마루 테두리마다 구름 문양이 있어 운상각이라 부르기도 한단다.. 멋지지 않은가. 

더 머무르다 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나섰다.

기와 너머로 석류가 잘 익었다. 7월이나 8월에 왔으면 정겨운 흙담에 걸린 능소화도 볼 수 있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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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수봉정사로 가보니 해설자가 마루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장연순 해설자는 화요일에 해설을 하고 있는데 평소 한국건축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봉정사를 나서며- 거북이 빗장이다. 장수의 의미도 있지만, 자세히 보면 거북이 등에 팔쾌 중 건 괘(양)와 곤 괘(음)가 새겨져 있다. 음양은 태극이며 곧 우리나라 태극기를 의미한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에 대한 마음을 새긴 것이었다. 이런 것을 발견할 때 “자연관광은 한 번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문화관광은 이곳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여러 번 되새겨 볼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말한 장 해설자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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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편에 애기 거북이가 엄마 아빠와 마주보고 있다.


마을을 나서며- 저기 들판 가운데 세 그루 나무가 있다. 저 나무들은 100여 년 이상을 마을과 함께 하면서, 인흥세거지가 문화 유산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써 왔는 과정을 옆에서 생생히 지켜봤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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