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심훈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頭蓋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나라 문학인들은 적지 않게 친일을 했다. 그만큼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일제가 가하는 압력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일제 앞에 뜻을 굽히지 않고 저항시를 쓴 분들도 있었다. 그중에는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작품도 있는데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C. M. 바우라 교수는 『시와 정치』에서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두고 세계 저항시의 본보기라는 극찬을 했다.
『상록수』라는 농촌계몽 소설로도 유명한 심훈은 한때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하고 영화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으며 시집을 출간하려던 적도 있었다. 일제의 검열에 의해서 무산당했지만 그의 시집은 해방 이후에 유고시집으로 간행이 되었다.
「그날이 오면」은 심훈 자신도 참여했던 3·1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30년에 창작했다고 전해진다. 작품은 민족의 독립이 오는 날을 가정하여 그날의 기쁨을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삼각산이 춤을 추고 한강물이 용솟음칠 만큼 그날의 감격은 온 민족에게 환희를 안겨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까마귀가 되어 종로의 인경(본래 ‘인정’으로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해 만든 커다란 종)을 들이받아 죽더라도, 그리고 자신의 몸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치더라도 그날만 온다면 원이 없겠다는 표현에서는 전율마저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