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정기를 대견사에서 만나다
산사에서 만난 새벽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그 흔한 풍경소리도, 산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늘은 스님의 새벽 예불소리도 잠시 쉬는 듯하다. 산새도 스님도 깊이 잠들었나 보다.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민 반달만이 낯선 방문객을 반긴다.
고요한 산사의 마당에서 올려다 본 새벽하늘은 어릴 적 고향 마당에서 올려다 본 하늘을 떠오르게 한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세월 속에서 나는 몸도 마음도 이렇게 변했건만 하늘은 어찌 그대로인가. 아버지가 들려주던 별자리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카시오페아, 북극성, 북두칠성이 반갑기만 하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에 무거운 몸과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그래, 하늘에 별은 항상 있었구나! 바쁜 일상으로 내가 하늘을 쳐다보지 않았을 뿐......’
쌀쌀한 새벽바람을 맞으며 삼층석탑에서 내려다 본 도심 야경은 휘황찬란하다. 크리스마스트리에 걸려있는 전구들을 보는 것 같은 가로등이 줄지어 있다. 새벽 5시. 무엇이 도시를 잠 못 들게 하는 걸까? 저 화려함속에 감춰진 비밀은 무엇일까? 저 도심의 불빛이 별빛을 바래게 하는 건 아닐까?
대견사 삼층석탑은 일반적인 탑과 달리 절벽의 바위를 바닥돌로 하고 그 위에 2층 기단의 3층탑을 세웠다. 그래서인지 별다른 꾸밈이 없어 소박하다. 임진왜란 때 허물어져 있는 것을 달성군에서 1988년 높이 3.67m의 3층탑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쪽하늘에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자 그제 서야 인기척이 들린다. 저 멀리 산새소리도 간간히 들린다. 스님이 마당을 쓰는 빗질소리가 싸아~싹 싸아~싹 듣기 좋다. 가만히 구경만 하려니 죄송스럽다.
“스님, 빗자루가 하나밖에 없나요? 저도 좀 도와드리고 싶은데......”
“아닙니다. 이것도 저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 그렇구나. 빗질도 스님에게는 수행이구나.
나를 괴롭히는 번뇌를 저 빗질로 없앨 수 있다면 깨끗이 쓸어버리고 싶다.
대견사 입구에는 ‘천천수(千泉水)’라 불리는 샘물이 흐르고 있다. 비슬산의 정기를 담은 천고지 천년샘에서 솟는 맛있는 물 천천수. 천천수 한 모금에 정신이 맑아지고 잠이 확 깨는 느낌이다.
대견사 마애불을 지나 뒤쪽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참꽃군락지로 가는 길이 나온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어둑어둑한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달빛에 비친 구절초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구구절절 슬픈 사연을 담은 듯한 꽃 구절초. 어두운 길을 비춰주는 작은 등불 같다.
먼 동쪽하늘이 붉게 물드는가 하는 찰나 저 멀리 솜이불을 펼쳐놓은 듯한 운무가 산허리를 휘감고 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저 푹신한 솜이불에 뛰어들어 옛 신선처럼 노니고 싶다.
구름 속에 숨은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몰래 소원을 빌어본다. ‘그동안 남에게 상처주고 힘들게 한 일이 있다면 용서해주고 앞으로는 욕심 없이 살게 해 주소서’
불타는 듯한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보려고 바쁘게 셔터를 누르던 나는 한순간 행동을 멈추었다. 카메라에 담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저 장관을 사진에 있는 그대로 담아낼 수는 있을까? 내 마음속에 담아가자는 생각에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산등성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구름 위로 떠오른 태양을 등지고 대견사로 다시 내려오니 법당에서 백일기도하는 신도들이 보인다. 백일동안 매일 천팔십배를 한다는 신도는 표정부터 의미심장하다. 수능을 앞두고 백일기도를 하는 수험생을 둔 어머니는 정갈한 모습으로 기도에 임한다. 저들의 간절함을 비슬산은 알아줄까? 대견사는 받아줄까?
신발을 벗고 법당에 들어서자 특유의 향내음과 촛불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엄숙한 침묵 속에 간간히 옷깃 스치는 소리만 사각사각 들려온다. 법당 한쪽에 자리를 깔고 백발배를 시작한다.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해주세요. 제가 하는 일이 잘 되게 해주세요.’바라는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욕심이 끝이 없다. 그러나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마음이 깨끗이 비워지는 것을 느낀다.
무릎이 잘 펴지지 않고 허리가 뻐근하게 아파오자 어느덧 백팔배가 끝이 난다. 몸은 비록 힘들지만 마음은 가벼워져 법당을 나선다. 천팔십배를 하는 저들에 비하면 하찮은 기도지만......
연등이 춤추는 앞마당에 내려서니 적멸보궁 사리탑 봉안식 준비로 대견사의 아침은 분주하다. 적막했던 새벽과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대견사는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전성기에는 비슬산의99개 사찰 중 중심 사찰로서 신라 헌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 되었으며, 세종 때 대견사로 개칭되었다한다. 대견사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되면서 용연사와 함께 달성군을 대표하는 적멸보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몇 년 전 비슬산을 등산할 때 삼층석탑과 대견사 터만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2014년에 개산식(절을 다시 세운다는 뜻)을 가지고 대견사는 정식사찰로 재등록되었다. 삼층석탑만 덩그러니 있을 때와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이제야 탑이 제자리를 찾은 듯하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대견사를 품고 있는 비슬산.
비슬산은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형상을 닮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노, 장영실, 대왕의 꿈 등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수많은 바위와 흘러내릴 듯한 암괴류로 이루어진 비슬산은 봄이면 붉은 참꽃이 산 정상을 뒤덮는다. 기바위, 코끼리바위, 형제바위, 부처바위, 큰거북바위 등 그 이름도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처음엔 바위 이름들이 낯설지만 이름을 보고 바위를 보면 정말 부처처럼 코끼리처럼 거북이처럼 보이는게 신기하다.
암괴류란 큰 자갈 내지 바위크기의 둥글거나 각진 암석덩어리들이 집단적으로 산 사면이나 골짜기에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을 말한다. 비슬산 암괴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전~10만년 전인 주빙하기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의 거석들로 구성되어 특이한 경관을 보여준다. 또한 그 발달규모가 대단히 큰 것으로 화강암 지형에서는 보기 드물어 가치가 매우 높은 지형이다.
암괴류 곳곳에는 누군가가 쌓은 돌탑들이 줄지어 있다. 무엇이 그리 절절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돌탑을 쌓은 걸까?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을 담고 있어서일까?
오전 9시.
대견사는 적멸보궁 사리탑 봉안식이 한창이다. 해발 950m 산사에 어울리지 않는 트럭들과 공사차량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지만 분주한 신도들과 스님들의 모습에서 비슬산의 힘찬 정기가 느껴진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린다. 신도들이 정성스레 준비한 묵밥을 난생처음 먹어본다.맛있게 익은 묵은지와 묵채에 밥을 말아먹는 묵밥이 꿀맛이다. 이래서‘시장이 반찬’이라는 옛말이 나왔나 보다.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암괴류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에 만난 전기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다. 휴일을 맞아 비슬산과 대견사를 찾은 사람들이다. 다음에 대견사를 오를 때는 전기차를 타고 와봐야겠다.
비슬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에 느낀 찬 기운과는 대조적으로 햇살이 따갑다. 가을인지 여름인지 알 수 없는 요즘 날씨다. 비슬산에서 멀어질수록 도심이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뒤돌아 저 멀리 바라보니 대견사가 나를 보고 손짓한다. 잘 가라고, 다시 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