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계추씨(秋溪秋氏) 중흥기적비 제막식
11월3일 명심보감의 얼이 서린 화원읍 본리리 인흥서원(仁興書院) 앞에서 추계추씨 중흥기적비 제막식이 개최됐다.

조선시대 서당 등에서 어린이들의 학습교재로 사용해 온 한문교양서 명심보감(明心寶鑑)의 편저자이자 추계추씨 3세손인 노당 추적(秋適)[1246~1317]선생의 공덕을 기리는 이날 행사에는 추경석 추계추씨 대종회장과 건설부 장관을 지낸 추경석, 추병직 씨 등 문중 관계자와 김문오 군수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교석 씨의 사회로 진행된 행사는 제막, 순국선열과 조상님께 묵념, 내빈인사 및 축·격려사, 비문낭독, 감사패 증정, 송시 낭송, 경과보고 등으로 이어졌다.

추적선생은 1260년(원종 1)에 1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뒤 안동서기(安東書記)·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 1298년(충렬왕 24)에 환관 황석량(黃石良)이 권세를 이용하여 자신의 고향 합덕부곡(合德部曲)을 현으로 승격시킬 때 그 서명을 거부하여 순마소(巡馬所)에 갇히기도 했다. 그 후 민부상서(民部尙書)·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을 역임하고, 시랑국학교수(侍郞國學敎授)로 재임할 때 『명심보감』을 엮어 가르쳤다. 안향(安珦)과 더불어 정주학(程朱學)의 도입을 꾀하였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며, 달성군 화원읍 인흥서원(仁興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윤정 기자(hindor@dsmea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