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복병 _ 우보 만보(漫步)
수필가 하종혁
하 종 혁
예전의 달걀 꾸러미를 아시는지? 짚으로 엉성하게 짠 그 꾸러미는 달걀을 반쯤만 보듬고 있다. 한데 그런 꾸러미에 싸인 달걀이 두터운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온전하게 보호된 요즘의 달걀에 비해 도리어 덜 깨진다고 하면 믿어지는가? 이유인즉, 짚으로 엮은 꾸러미는 달걀이 반이나 드러나므로 한결 조심스레 다루기 마련이고, 그러니 그 꾸러미가 오히려 더 안전하다나? 말하자면 겉으로 드러나는 복병인 셈이다.
‘치맥’을 싫어하는 한국 사람은 얼추 없겠지. 땀을 많이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이나 높은 산을 오르내린 사람들이 나누는 맥주 한 잔의 맛을 그 무엇에 비하겠는가. 더구나 퇴근길 출출할 때, 통닭 한 마리까지 얹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니겠나.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시작된 맥주 한잔이 때론 나를 고주망태로 빠뜨리는 복병이라는 사실은 잘 아시지?
기분 좋을 때일수록 말조심해야 한다. 그러잖으면 말다툼이 일기 십상이다. 비단 아내와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사달은 아닐 테지만, 상대가 아내라면 더더욱 깊이 새길 일이다. 평상시에 깊이 묻어둔 말을 이런 때 마음이 나긋해져서 슬며시 풀어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서로 기껍게 맞장구를 치다가 어느새 듣기 거북한 말이 거듭 섞이고, 마침내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박차게 된다. 이다음엔 조심해야지 깊이 새기지만 또다시 제도루묵이 되기 일쑤다.
이십 수년 전 일이다. 바로 아래 동생의 사업이 거덜 나는 바람에 나도 막다른 지경에 빠졌다. 형편이 말이 아닐 때, 살던 동네에 새로 조성한 ‘먹거리타운’의 개업식에서 아내가 뽑은 행운권이 일등으로 당첨되었다. 경품으로 받은 것은, 놀라지 마시라. 소형 승용차였다는 사실! ‘비스토’라는 이름의 그 경차는 며칠 후 돈으로 바꾸어져 여러 사람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었다. 거참, 생광스러운 복병이었다.
삶의 모퉁이 굽이굽이에 어딘들 복병이 없겠는가. 얄궂은 운명은 몸을 숨겼다가 느닷없이 뒷덜미를 후려치기도 하고, 때로는 엉뚱한 길섶에서 예기치 않게 얼굴을 살포시 드러내어 발걸음을 가볍게 하기도 한다. 시련은 그 사람이 견딜 만큼만 온다지? 그리고 슬픔은 혼자 오는 법이 없고, 기쁨은 겹쳐 오지는 않는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