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후원하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네이버톡톡
맨위로

변곡점 _우보 만보(漫步)

등록일 2025년08월25일 14시54분
변곡점 _우보 만보(漫步)
하 종 혁
 
umg_20250825145258_N_7_600x600_100_5_2
수필가 _ 하종혁 
 
 
‘위로 볼록인 상태에서 오목인 상태로, 또는 위로 오목인 상태에서 볼록인 상태로 변하는 점’을 수학에서는 ‘변곡점’이라 정의한다. 주식에도 ‘변곡점 이론’이라는 게 있는데, 주식이 상승하다가 하락으로 반전되거나 그 반대로 전환되는 시점을 말한다. 그 변곡점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부자 되기는 손바닥 뒤집기일 터인데…. 

도자기에도 변곡점이 있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는 우아한 색깔로 천하의 명성을 얻었는데, 그것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 것이 형태의 자연스러움이다. 도자기는 특히 주둥이나 굽 부분의 변곡점을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명품 여부가 가려진다고 한다. 와인의 잔에도 변곡점이 있는데, 그 모양은 다양해도 하나같이 튤립의 형상이다. 대개 와인은 이 변곡점까지만 따르는데 잔 높이의 3부에 해당한다. 7부가 여백인 셈인데, 이 공간에 향이 뿜어져 나와 머무른다. 안으로 오므라든 주둥이가 그 향을 오랫동안 유지하게 한다는 게다.

인생에도 변곡점이 있다. 평범한 배우로 살던 로널드 레이건(1911∼2004)은 쉰여섯의 나이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된 다음, 예순아홉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유머 감각과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냉전을 끝낸 주역으로 역사에 뚜렷하게 남았다. 반면에 도덕적 신념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려 했던 지미 카터(1924∼2024)는 재임하던 동안은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가혹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직에서 물러난 후에 국제 분쟁 조정과 질병 퇴치, 인권 신장에 두드러진 활약을 함으로써 퇴임 이후의 행적으로는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모든 생명체에도 당연히 변곡점이 있다. 나무가 왕성하게 생장하다가 어느 순간에 생장이 더디게 되는 지점을 변곡점이라고 한다. 생물의 생장 현상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측정하여 그래프로 표시한 것을 ‘생장 곡선’이라 한다. 인간의 경우, 남자는 23세 정도까지 상승하다가 25세쯤에 일정해진 후 감소하고, 여자는 20세쯤에 일정해지고 25세가 지나면서 감소한다고 한다. 

외환위기의 광풍이 몰아치던 때였다. 셋째 동생이 주식에 투자해 보지 않겠냐며 은근히 소매를 끌었다. 주식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을뿐더러 여윳돈도 없는 처지에 무슨 소리냐며 손사래를 쳤다. 한데 우물쭈물하던 아내를 구슬러 빚까지 얻어 기어코 주식에 손을 댔다. 그런데 웬걸, 채 반년이 못 되어 짭짤한 수익을 볼 줄이야. 가뜩이나 쪼들리던 살림에 마치 동화에서나 있을 만한 일이 일어난 게다. 하지만 동생은 아내더러 이번 한 번으로 끝내고 앞으로 주식일랑 거들떠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지만 아내는 몇 날 며칠 끙끙대더니 어떤 대형 은행주를 샀다. 나는 이번에도 기를 쓰고 말렸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톡톡히 재미를 본 탓인지 내 말은 귓전에 닿지도 않았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고, 좋은 일은 겹쳐 오지 않는다고 했지? 은행 합병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돌더니 며칠 사이에 그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어쩔거나, 번 돈은 고사하고 적잖은 원금까지 보태 왕창 날리고 말았다.

다시 생장 곡선을 생각한다. 목덜미가 쇠 멱미레같이 된 지 이미 오랜 마당에 생장 곡선을 들먹이는 게 같잖지만 백 세 넘은 철학자가 여전히 활동하는 시대니만큼 이즈음의 내 삶의 좌표를 새삼 짚어보는 것이다. 서른일곱 성상을 고스란히 바친 교직을 떠난 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한 곳에서만 켜켜이 쌓인 시간이라 그런지 그 세월의 무게가 한층 더 무겁게 느껴진다.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은 빨리, 그리고 한 해는 더욱 빨리 흘렀는가 싶다. 

내게도 몇 차례 변곡점이 있었다. 한때 욱일승천의 기세로 상승하던 시점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 것 같던 절체절명의 순간은 도리어 점점 또렷해지니 거참, 고약하다. 지금 맞닥뜨린 이 지점이 아마도 내 삶의 마지막 변곡점일 것이다. 그런데도 책상에 책 몇 권 쌓아두고 간간이 원고지 빈칸을 메우는 일로 시간을 축내고 있으니 한심하달 밖에. 이런 중에도 이따금 생뚱맞은 상상에 잠기기도 한다. 여태 가보지 못한 낯선 길을 걷는 생경한 자신을 그리며 실없이 선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결제하실 금액은 원 입니다.
무통장 입금시 입력하세요
vote_up 올려 0 vote_down 내려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경제 사회 정치 세계 만평

칼럼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 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