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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골목길 방치" 비석의 반전... 125년 전 "대구 정신" 품은 문화유산 되다

등록일 2025년06월30일 13시00분
1899년 약령시 대화재 의연금 기록... 대구시, '영시 화재 의연비' 문화유산자료 지정
디딤돌 신세에서 20년간 방치... 이문기 명예교수 연구로 가치 재발견
국채보상운동 주역 서상돈 등 이름 새겨져... '상업도시 대구' 정신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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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영시_화재_의연비가 대구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다. @대구시
 
 
[대구=더피플매거진] 한때는 민가의 디딤돌로, 이후 20년간 약전골목 한편에 방치됐던 낡은 비석이 125년 전 대구 시민들의 연대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품은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다시 태어났다.

대구시는 30일, 대구근대역사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구 영시 화재 의연비(大邱 令市 火災 義捐碑)'를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공식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 비석은 1899년 12월, 대구 약령시(당시 명칭 '영시')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의 피해 복구를 위해 의연금을 모았던 사실을 기록한 '화재의연 공덕비'다. 당시 화재로 관아 건물과 비단 가게 등 상업시설 19곳, 민가가 불타는 큰 피해가 발생하자, 경상감영과 대구군이 앞장서고 한성은행소 및 지역 상인들이 힘을 보태 피해민을 도왔던 역사가 담겨 있다.

이 비석이 빛을 보기까지는 한 향토사학자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다. 2022년 5월, 김용익 언어문화연구회 자문위원의 제보를 받은 이문기 경북대 명예교수(역사교육과)는 3D 스캔 등 과학적 조사를 통해 마모된 비문을 완전히 해독해냈다.

판독 결과, 비문에는 국채보상운동의 발의자인 서상돈 선생을 비롯해 서덕초, 최극창 등 당시 대구의 유지와 부호 14명의 이름, 의연금 액수, 그리고 모인 돈을 화재 피해 상인과 주민들에게 분배한 내역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이 교수는 황성신문 기사(1899년 12월 5일자)를 통해 화재 발생 시점까지 정확히 고증해냈다.

이문기 명예교수는 "이 비석은 국채보상운동으로 이어지는 대구 유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입증하는 귀중한 유물"이라고 그 가치를 평가했다.

대구시는 이 비석이 근대 시기 '상업도시 대구'의 면모와 위기 상황에서 함께 힘을 모았던 대구의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라고 판단해, 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해 보존하기로 했다.

이재성 대구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잊힐 뻔했던 소중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어 뜻깊다"며 "앞으로 지역민들을 위한 역사 학습 자료로 적극 활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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