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 만보(漫步)
사슴과 벗하다
‘눈이 짓무르도록, 가슴이 터지도록 봄을 느껴 보자’던 어느 시인의 노래가 올해처럼 절절했던 적은 없었다. 미증유의 산불이 누대에 걸쳐 가꾼 광활한 산림과 수백의 마을을 삽시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고운사의 ‘가운루’는 보물 승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몸에 두른 채 불길에 휩싸였고, 지역의 축제는 대부분 취소되거나 축소되었다. 며칠 전엔 수십 년 만에 가장 따뜻한 4월이라고 야단이더니 오늘은 유례없는 4월 추위라고 호들갑이다. 이래저래 뒤숭숭한 마음을 추스르려고 집을 나섰다.
신천대로를 벗어나 청도군 이서면으로 향하는 팔조령 초입, 삼산리 마을에서 산허리를 끼고 서쪽으로 오리쯤 가면 녹동서원이 있다. 여기서 새로 난, 가파른 길을 다시 그만큼 오르면 ‘우록2리’ 마을에 닿는다. ‘백록마을’이다. 마을회관 곁에, 우성범(禹成范, 1534∼1603)이 1556년에 이곳에 이주하여 자신의 호를 ‘백록당(白鹿堂)’으로 지었고, 뒤에 김충선(1571∼1642)이 이 마을에 터를 잡아 ‘우륵(牛勒)’이라 이름한 것이 더해져 ‘우록리’라는 이름이 되었노라고 적힌 안내판이 서 있다.
여기서 ‘남지장사’까지는 1Km 남짓, 차를 두고 걷는다. 684년(신문왕 4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로, 우측에 백련암과 좌측에 청연암의 두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조선 시대의 고승인 무학대사가 수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들의 훈련장으로 사용한 곳이라 전한다. 몇 해 전에 청산에 올라서 이 절의 앉음새를 내려다본 적이 있다. 서쪽으로 우미산, 남쪽은 삼성산, 북쪽은 통점령과 삼정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는데, 모두 최정산에서 갈려 나왔다. 여러 산에서 솟은 물줄기가 아랫마을에 모였다가 유일하게 트인 동쪽으로 흘러 신천(新川)의 발원을 이룬다.
마을로 되돌아와 승용차로 한달음에 녹동서원에 닿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마음을 졸이며 오르내리던 산중의 좁은 길이 그새 중앙선까지 그어진 신작로가 되었다. 널찍한 길 양쪽 인도에는 공사 흔적이 여태 남아 있다. 검색해 보았더니 준공식을 한 지 채 한 달이 못 된다. 한동안 우록리 마을을 동서로 관통하는 큰 도로가 개설되었다고 떠들썩했던 모양이다. 청연암에서 녹동서원까지 호젓한 길을 걷던 옛일은 이제 희미한 기억 너머에 영 묻어야 할까보다. 길은 점점 가까워 지는데 마음은 도리어 허전해지니 이 무슨 연유인가.
임진왜란 때, 사야가(沙也加)라는 스물한 살의 일본의 사무라이가 조선에 귀순했다. 무슨 연유로 투항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가 조선에 오십 년이나 살면서 왕으로부터 ‘賜姓金海金氏(사성김해김씨)’라는 성(姓)과 ‘충선(忠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결혼하여 5남 1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의 공적으로 삼란공신(三亂功臣)이 되고, 정2품 정헌대부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장군의 사후 백오십 년쯤에 그를 배향하는 녹동서원이 건립되었다. 묘소는 서원 뒤 300m 지점의 산록에 있다. 장군의 후손 중에 벼슬한 이가 50여 명이요, 현재 전국에 사는 일족이 8,000여 명이나 된다니 그가 두 번째의 고향에서 일가를 제대로 이룬 것은 자명하다 하겠다. 하지만 서원의 외삼문 이름을 ‘향양문(向陽門)이라고 한 걸 보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익히 알겠고, 묘소가 남쪽을 향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그의 복잡한 심사를 짐작 못 할 바 아니다. 거기다 사람들이 서원 곁에 ’달성 한일우호관‘이라는 큼직한 건물까지 세워서 장군으로 하여금 사후에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였으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묘소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낯설다. 12만 평이나 되는 너른 골짜기를 그득 채운 마을에는 지금도 장군의 후손 80여 가구가 산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의 수효는 셀 수도 없고, 살림집보다 돈벌이하는 집이 더 많다. 주객이 바뀐 풍경이 어디 여기뿐이겠는가. 그래도 크고 화려하게 치장한 건물들 사이에 드문드문 앉은 나직한 기와집들이 이 고을의 만만찮은 연륜을 은근히 내보인다. 더욱이 어수선한 세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제히 연초록 새잎을 돋게 하는 자연의 모습이 눈물겹다. 이렇게 또 한 계절이 꿋꿋하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