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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에 새긴 정선아리랑

등록일 2015년02월24일 19시05분

청령포에 새긴 정선아리랑

 

태백에서 영월을 거쳐 정선으로 가는 동안 아리랑 노래가 메들리로 이어진다. 오늘따라 한이 서린 듯한 곡조의 아리랑에 마음이 기운다. 아리랑~ 아리랑~ 애잔하면서도 구성진 정선 아리랑이 귓전에 머문다.

 

몇 해 전, 복잡한 머리도 식힐 겸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차를 몰았다. 봉화 춘양을 거쳐 내리계곡의 풍광을 담으며 굽이도는 재를 넘어 당도한 곳이 영월의 청령포다. 이곳은 단종의 한이 서린 유배지로 평창강이 휘돌아 섬처럼 떠 있다. 차창을 여니 서늘한 기운이 목을 감는다. 햇살은 유난히 윤기를 더했지만 코끝에는 시린 기운이 감돈다. 비명에 간 어린 영혼이 한을 품어서일까. 산마루에 단풍도 질겁한 듯 하얗게 변해있다. 울창한 노송 군락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경은 감탄사를 자아낼 만큼 수려한데도 어린 단종을 떠올리니 마음도 발걸음도 무겁다.

 

말없이 흐르는 강물은 시린 기억을 잊지 않으려 함일까 시퍼렇게 흐른다. 소나무 군락을 지나자 작은 기와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유폐된 단종이 머물렀던 집이다. 빛바랜 툇마루는 마치 생을 다한 낙엽처럼 허허롭게 보인다. 초라한 편액에 새겨진 에제 시가 눈에 띈다.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물소리 바람소리가 전부인 이곳 산 중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중략.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는다.” 단종의 마음인가 싶어 가슴이 저려온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육백 년 세월을 지켜온 관음송이 있다. ‘관음단종의 몸부림과 절규를 보고 들었다는 뜻일까. 흰 몸피를 한 채 먼발치에서 집을 내려다본다. 처진 소나무 가지에 찬바람이 내려앉자 가지가 가늘게 떨린다. 단종과 함께 뛰놀았던 그때를 회상하며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것일까. 장승처럼 처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관음송은 마치 사육신의 분신으로 화해 있는 듯하다.

 

마침, 문학기행을 온 P문학회가 있어 염치없이 꽁무니를 따랐다. 오백여년 전으로 거슬러 가 단종을 조우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일행 중 한 명이 핸드마이크를 잡고 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역사는 언제나 가진 자의 편이지요. 단종의 죽음을 오늘까지 애통하게 여기는 건 가난한 사치일 뿐이다.” 라고 단정 짓는다. 조선의 역사에서 단종의 죽음은 별것이 아니라 치부해 버린다. 과거에 묻힌 사건이라 해서 감정까지 사치라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주위에 울창한 소나무 군락이 마치 어린 단종을 에워싸고 위협하는 군사들 같아 섬뜩해진다. 황급히 배에 올랐다. 사공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정선아리랑을 구슬프게 부른다. 걷잡을 수 없는 현기증이 전신을 마비시켰다. 청령포가 저만치 멀어졌지만, 뱃사공이 불렀던 정선아리랑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한 맺힌 절규가 되어 온몸을 엄습한다.

 

산들이 수직으로 솟아 있는 곳, 새들조차 숨어드는 정선이다. 쉽게 발을 들여 놓을 수도 없지만 한 번 디디면 빠져나감을 허락하지 않는다 한다. 서늘한 바람과 한 맺힌 노래만이 머물던 회색빛 도시가 아니던가. 드디어 정선, 거리마다 펼쳐놓은 아리랑 노래를 밟아 본다. 모여드는 사람들을 환영이라도 하려는 걸까. 강물에 몸을 씻은 햇살이 은빛으로 맞이한다. 그 옛날 이곳으로 유배 왔던 인걸도 강물에 서러움을 씻어내었으리라. 그리고 아리랑을 부르며 시름을 달랬으리라. 정선장을 저만치 두고도 발걸음이 더디다. 밀려서 들어가고 밀려서 나오는 형국이다. “얼른와요. 여가 장터래요라는 간판이 먼저 손을 내민다. 발길은 애잔한 아리랑 노랫가락이 흐르는 공연장에 머문다. 아리랑~ 아리랑~ 절규하듯 애틋한 명창의 구성진 가락이 바람에 실려 아우라지에 머문다.

 

세파에 시달린 몸 만사에 뜻이 없어 홀연히 다 떨치고

정열에 의지하여 지향 없이 가노라니

풍광은 예와 달라 만물이 소연한데

해 저무는 저녁놀 무심히 바라보며

옛일을 추억하고 시름없이 있노라니

눈앞에 왼갖 것이 모두 시름뿐이라.

아리랑~ 아이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로 날 넘겨주게

 

청령포를 휘돌아 성마령 넘어 맑은 모습으로 돌아오는 아리랑 가락, 고은 시인의 정선아리랑 시비에서 서럽도록 그립게 조우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달성군 안전행정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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