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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을 그리며

등록일 2015년01월09일 11시55분

달성人 서정길 Essay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을 그리며

 홍의장군으로 알려진 곽재우 의병장의 공적을 기리는 소박한 비석에 눈길이 머문다. 몰락한 가문에서 겨우 세운 듯 두자 크기 비석이라니 안쓰럽다.

 솔례(率禮)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십리쯤 달렸다. 도로초입 야트막한 묘역에 들어선 순간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약간 경사진 터에는 봉분이 밋밋한 십여 기의 묘가 전부다. 아무렇게나 쌓은 축대에 의지한 채 삼월의 가난한 햇살을 안고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소나무가 마른 잔디밭을 둘러싸고 있지만 황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내판이 없다면 봉분과 비석의 크기가 너무 초라하다. 지금껏 명성이 자자한 가문의 묘지치고 이처럼 소박한 묘역을 본 적이 없다.
 
 현풍면장으로 발령을 받고 처음 찾은 곳이 솔례마을이다. 대니산 기슭에 오십여 호의 가옥이 남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솔례 마을은 현풍 곽 씨의 세거지다. 조선 중기에 지어진 고택인 추보당(追報堂)을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룬다. 멀리서 봐도 위엄이 느껴지는 기와집이다.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수령 사백년을 넘긴 백일홍이 하얀 표피를 드러낸 채 수호신 인양 버티고 있다. 본채 처마에는 혼신의 힘을 다해 쓴 듯 묵직한 필체의 솔례정사(率禮精舍)와 대청에는 포산고가(苞山古家)란 편액이 눈에 띤다. 금방이라도 묵향이 배어나올 것만 같다. 며느리로 보이는 중년여성이 다소곳한 자세로 허리를 굽혀 신임면장이 인사차 들렀다고 전한다. 한참 후에야 굵직한 헛기침 소리가 대청을 울린다. 종손 어른은 한복 차림으로 반갑게 맞아 준다. 큰절로 예를 갖추고 나니 느릿한 어조로 본관이며, 사는 곳과 집안 내력을 하나하나 물어왔다. 내가 외손임을 밝히자 가는 길에 곽 망우당 할아버지 묘소와 십이정려각(十二旌閭閣)을 꼭 참배하라 이른다.

 동행한 곽 조합장은 가문의 내력과 전통, 향사와 문중의 관습들을 자세하게 일러준다. 현대를 살아가는 방식과 거리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일문(一門)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대단하다. 망우당께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평정한 이후에 타계했다. 그럼에도 사대부 가문에서 평장을 하라 하신 유언이 언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다만 장군의 검소한 삶의 방식이거나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에게 부역을 면하게 해 주고자하는 배려가 아닌가 싶다. 장군의 품성이 워낙 강직하고 도의가 아니면 임금이 제수한 벼슬조차도 미련 없이 버리지 않았던가. 원래는 평장으로 작은 표지석이 전부여서 묘지인 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후일 부임한 현풍현감이 보일 듯 말 듯 한 높이로 봉분을 만들었는지를 헤아려 본다. “예장을 하지 말라. 봉분을 만들지 말라...”라는 유지를 받들면서도 장군에 대한 예를 갖춘 듯하다. 현감의 마음이 지금의 내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준비해간 막걸리 한 잔을 따라 정성을 다해 올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한다.  

 잠시 눈을 감고 임진년을 거슬러 가 본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뵈었던 홍의장군 곁에 내가 다가선다. 붉은 갑옷을 두르고 백마를 탄 그분을 호위하여 솔바위 나루에서 일전을 벌인다. 선봉에 선 그를 따라 왜군들을 무찌른다. 신출귀몰한 전술에 우왕좌왕 하던 이만의 왜병은 맥없이 쓰러진다. 펄럭이는 홍의만 봐도 기겁하여 도망치는 왜군이다. 바다에 이순신이 있다면 육지엔 곽재우가 있다. 그러나 통쾌한 승리의 기쁨도 잠시 뿐, 칠 년 전쟁은 막을 내리지만 장군을 음해하는 조정의 횡포가 도를 넘는다. 전투에서 보여준 용맹함을 낱낱이 적은 상소문을 쓴다. “홍의장군의 충심을 모르면 조선의 앞날은 암흑뿐이라고”.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진다. 때마침 우포늪에 모여든 철새가 묘지 위를 난다. 의로운 길이 아니면 부귀영화까지도 마다한 망우당의 한평생은 구속됨이 없는 철새처럼 자유로울 것 같다.

 최근 물질주위의 팽배로 몰지각한 사람들이 묘지를 호화롭게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호화분묘와 큰 비석에 새겨두었다 해서 명성이 역사 속에 새겨질 리는 없다. 무덤은 흙으로 쌓여져 영원하지 않고 참된 의와 명성은 역사 속 활자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는 봉분과 묘석에서도 장군의 기개세가 아침 햇살처럼 찬란하지 않은가. 장군께서 남긴 시의 일부다. “명분은 지키기 어렵고, 공은 이루고 머물기란 더욱 힘들다....” 그렇다.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고 낙향하여 시문을 즐기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는 소박한 품성은 범인(凡人)은 흉내내기 어렵다. 비록 장군의 육신은 한 줌의 흙이 되고 작은 비석 하나만을 남기었을지언정 그의 호국정신과 명성은 역사라는 활자에 새겨져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는 곽문의 자랑에 머물지 않고 역사가 깊어질수록, 국가가 위기일 때 수록 더욱 빛나고 또렷하게 각인될 것이다.

 인근에 홍의장군 위폐가 모셔진 예연서원(禮淵書院)이 있다. 이곳 신도비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땀을 흘리는 신통함을 지녔다고 한다. 요즘 여야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정쟁을 일삼고 있다. 오죽했으면 사후에도 나라를 걱정하며 땀을 흘릴까.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이야말로 난세를 극복한 진정한 영웅이요, 죽어서도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신령이다. 우리 모두 망우당(忘憂堂)곽재우 장군의 호국정신과 삶의 철학을 마음 한가운데 새겨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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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달성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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