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花園)의 역사
"꽃을 심은 동산"이란 뜻을 간직한 "화원(花園)"은 고려 때 기록인『삼국사기』잡지(雜志) 편에 등장한다. "화원현(花園縣)은 본래 설화현(舌火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도 그대로 부른다." 라 하였다. 경덕왕은 757년 설화현이던 지명을 화원현으로 고쳐 수창군(壽昌郡)에 소속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성주목(星州牧) 편에는 "화원현은 성주 동쪽 71리에 있다. 본래 신라 설화현(舌火縣)인데 경덕왕이 지금 이름으로 고쳐 수창군(壽昌郡)에 붙였다. 고려 현종(顯宗) 때에 성주에 붙였고, 뒤에 대구(大丘)에 옮겨 붙였다가 뒤에 다시 성주에 붙였다. 별호는 금성(錦城)이다.(在州東七十一里. 本新羅舌火縣. 景德王改今名. 屬壽昌郡. 高麗顯宗時來屬. 後移屬大丘. 後復來屬. 別號錦城)"라 기록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이행(李荇)·윤은보(尹殷輔)·신공제(申公濟) 등이 왕명에 따라 중종 25년(1530)에『동국여지승람』을 새로 증보하여 만든 전국 지리지이다. 화원현은 1530년 이전에 대구에 내속되었다는 기록이다.『승전원일기』인조 18년(1640) 4월 29일자 기록에는 "선조(先朝) 때에 성주(星州)의 화원현을 성주(星州)에서 분할하여 대구(大丘)에 소속시켰는데, 대구 사람들이 호구(戶口)를 계산하여 침학(侵虐)하였고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마구 채찍질을 하였습니다. 이에 화원의 백성들이 상심하고 골머리를 앓다가 간절한 심정으로 울부짖자, 옛 고을로 회복될 수 있었습다." 라 적혀 있다. 이는 화원현이 성주에서 대구로 다시 대구에서 성주로 옮겨 다녔다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하는 기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성주목 산천(山川) 조에서 성산(城山)을 "작은 산이 큰 강을 베고 있는데 그 위가 평평하고 넓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라왕이 꽃을 구경하던 곳이므로 화원현의 이름을 얻은 것이 이 때문이다." 한다. 그 아래에 예전에 금강정(錦江亭) ·오류정(五柳亭)이 있었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강 북쪽에 상국리(上國里) · 세자지(世子旨) 등의 땅이 있는데 모두 신라왕의 장전(帳殿)의 터다. 다른 이름은 금성(錦城)이라 불리어졌다."라 적고 있다. 성산(城山)은 현재 화원동산의 옛 이름이다.
화원이란 명칭은 신라 왕이 꽃을 구경하던 곳이므로 화원현의 이름을 얻은 것으로, 성산(城山)이 화원 유래의 근원이 된다. 낙동강의 별칭인 금강(錦江)은 화원의 별칭인 금성(錦城)에서 비롯된 것이며, 금성은 금강정(錦江亭)에서 유래된 것이다. 화원은 숙종11년(1685)에 대구에 다시 편입되었다.
영조(英祖) 연간(年間)에 편찬된『여지도서』를 보면 화원현(花園縣)은 화현내(花縣內)·감물천(甘勿川)·조암(阻巖)·월배(月背)·인흥(仁興)·옥포(玉浦)·법화(法化)·성평곡(省平谷) 등 8개의 방(坊)을 두고 있었다. 영조(英祖) 연간(年間)에 편찬된『대구읍지』를 보면 8개의 방에는 천내리(川內里)·현내리(縣內里)·성산리(城山里)·원당리(元堂里)·명곡리(椧谷里)·설화리(舌化里)·갈산리(葛山里)·건법리(巾法里)·감물천리(甘勿川里)·송현리(松峴里)·감천리(甘泉里)·감천일리(甘泉一里)·감천이리(甘泉二里)·상인리(上仁里)·월배리(月背里)·채정리(蔡亭里)·원덕리(遠德里)·도원리(桃源里)·용천리(龍泉里)·신기리(新基里)·대곡리(大谷里)·인흥리(仁興里)·쌍학리(雙鶴里)·간경리(干京里)·대방리(大方里)·옥포리(玉浦里)·신평리(新坪里)·법화리(法化里)·신당리(神堂里)·교항리(橋項里)·강림리(江林里)·솔별리(率別里)·김흥리(金興里)·반송리(盤松里)·기세리(奇世里)·연수리(延壽里) 등 36리(里)가 있었다. 당시 36리는 현재 달성군 화원읍 ·옥포면과 달서구 일부 지역에 해당된다.
『대구읍지』는 영조(英祖) 이후 1899년, 1907년, 1924년 등 여러 차례 더 편찬되었으며, 이후『교남지,1928』『달성군지,1931』『금성지,1960 』『달성군지,1992』등이 편찬되어 화원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일제 강정기인 1914년에 화현내면·인흥면은 달성군 화원면(花園面)으로 감물천면·조암면·월배면은 달성군 월배면(月背面)과 성서면(城西面) 일부로 편입되었으며, 옥포면·법화면·성평곡면은 옥포면(玉浦面)으로 통폐합을 되었다. 화원면은 1992년 3월에 읍(邑)으로 승격되고, 1995년 3월에 다시 대구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