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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의 고즈넉한 멋과 향 느낄 수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도 제격

등록일 2014년08월05일 09시22분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용연사에 가다”
-불가의 고즈넉한 멋과 향 느낄 수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도 제격
-대대적인 단청보수 및 시설수리 공사 中

 용연사는 옥포면 반송리의 비슬산 북쪽 자락에 있다. 남평문씨세거지인 인흥마을에서 다시 화원읍 사거리로 나와 현풍·고령 쪽으로 난 5번 국도를 따라 약 2.7㎞ 가면 왼편에 용연사 표지판과 함께 용연사로 가는 3번 시도로가 나온다. 이 길을 따라 4.8㎞ 더 가면 두 갈래로 길이 나뉘는데 왼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3번 시도로를 따라 1.7㎞ 더 가면 용연사 입구 대형 주차장이 나오고 약 1㎞ 더 올라가면 용연사에 닿는다. 대중교통 이용 시 600번이나 달성2번, 달성5번을 타고 용연사주차장에 하차하여 조금만 걸어 오르면 용연사에 도착한다.

 비슬산 용연사는 통일신라 신덕왕 원년(912)에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처음 지었다고 전해지며,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진신사리로 유명해졌다. 조선 세종 1년(1419)에 천일대사(天日大師)가 용연사를 다시 지었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되는 등 여러 차례 병란과 중건을 거듭하여 중창했다. 이렇게 지어진 건물은 200여 칸이 넘고 승려도 500여 명이나 되는 큰 절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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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건물은 1728년에 세워진 것으로 현재 경내에 극락전, 보광전, 관음전, 사명당 일주문 등을 비롯하여 17동의 건물과 치악산 각림사에서 옮겨온 사리탑과 고려시대의 3층석탑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필자가 용연사를 방문한 7월 중순은 다소 이른 피서 시기였지만, 방학을 맞아 불볕더위를 피하러 온 학생들과 주변 음식점에 점심을 먹으러 온 행락객들로 붐볐다. 큰비가 한차례 내린 후 마른가뭄이 지속되자 계곡물은 바닥을 드러내고 드문드문 말라있었지만, 관광객들은 개의치 않고 멱을 감고 물장구를 치는 등 휴식을 즐기는 모습에 요즘 젊은 층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신조어이자 대구와 아프리카의 합성어인 일명 ‘대프리카’로 불리는 대구의 여름 날씨를 새삼 짐작케 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뜨거운 날이었지만, 잠시 용연사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앉아
있으니 숲그늘과 등마루를 타고 이따금 불어오는 산들바람은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줬다. 또, 졸졸 들려오는 계곡물 소리가 그렇게 경쾌할 수 없다. 물소리,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용연사로 향하는 길은 더위로 인해 지친 마음과 몸의 피로를 가시게 했다.

 현재 용연사는 매표소에서 대인 일 인당 천 오백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다. 한 편에서 입장료 집금이 군민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부당한 처사라는 볼멘소리도 잇따르지만, 쉽사리 철회는 힘들어 보였다.

 입장권을 끊고 쭉 뻗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문화해설사의 집과 주차장이 나타나고 일주문이 길손을 반긴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오른쪽으로는 용연사 천왕문이 왼쪽으로는 적멸보궁 가는길이 있다. 먼저 극락전이 있는 천왕문으로 발길을 뒀다.

 현재 용연사에서는 일주문 등과 극락전으로 향하는 돌계단 등지의 대대적인 단청 채색작업 및 시설의 보수, 수리 공사가 한창이어서 그 멋을 자세히 살펴보진 못했지만, 이는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될 것으로 보였다.

 천왕문을 오르기 전 왼편에 마련된 약수터에서 흐르는 물 한 사발을 들이키며 다소 생뚱맞은 곳에 존재하여 웃음을 자아내는 악어 석상을 벗 삼아 거친 숨을 돌렸다. 천왕문을 지나려면 안양루를 거쳐야 하는데 이는 극락전으로 오르는 축대 위에는 범종을 걸어 놓은 2층 누각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해당 누각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의 사물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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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루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햇볕이 잘 드는 드넓은 마당이 나타난다. 그 마당의 중심에는 지방유형문화재 제41호인 극락전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좌, 우로는 삼성각과 영산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극락전 앞이자 마당의 한가운데는 대구광역시문화재자료 제28호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석탑 용연사 삼층석탑이 첫 눈길을 끈다. 용연사 삼층석탑은 높이 3.2m의 화강암으로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고, 지붕돌의 조각양식이 변화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은 무량수전 혹은 아미타전이라고도 일컫는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집이다. 조선 후기 18세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며, 1995년에 대구유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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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 내부에는 삼존불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조선 후기 영조 4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존불은 당대를 대표할만한 뛰어난 진경시대의 유물로 손꼽힌다. 극락전임에도 아미타불이 아닌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보현보살을 봉안한 것이 의미가 있으며, 이 삼존불은 시종 너그럽고 포용적 미소로 불자들을 맞이한다. 후불탱화 역시 미타탱(彌陀幀)이 아닌 영산탱(靈山幀)이고, 불단 상부는 보개를 얹고 운각과 용을 장식하여 장엄하다.

 또, 단청과 벽화는 지난 극락전의 세월을 대변하듯 빛이 발하여 흐리고 낡았지만, 옛날의 풍치가 저절로 드러나는 멋이 엄지를 치켜세운다. 이는 그 어떤 뛰어난 기술보다 시간이라는 화법으로 그려낸지라 고색창연하고 담백한 맛에 화려함에 익숙한 두 눈을 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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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길은 사천왕을 모시고 있는 천왕문을 통과하면 나타난다. 용연사의 적멸보궁은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스님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피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통도사에서 금강산으로 모셔가던 중 사리 1과를 용연사에 봉안해 적멸보궁이 되었다 하며, 적멸보궁의 금강계단은 석가모니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적멸보궁 법당은 여느 적멸보궁과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아니 계시고 유리문 너머에 사리탑이 있어 예불을 올릴 수 있게 해두었다. 절 안에 세워진 석가여래비에는 석가의 사리를 모시고 이 계단을 쌓았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을 통해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계단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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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연사는 달성의 대표 사찰로 매년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옛날, 이 절터의 동구에 용추가 있어 등천했다 하여 용연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과 영남 유일의 적멸보궁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어 교육적으로 자녀들과 함께 찾아도 좋다. 또한, 아름다운 계곡이 용연사로 향하는 길목의 양가에 가로질러 흐르고 있어 특이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줄뿐더러 피서를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이번 피서는 먼 곳이 아니어도 좋다. 가까운 용연사를 찾아 다양한 먹거리도 즐기고 불가의 멋과 향을 느껴보자.

배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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