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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빈창(河濱倉)

등록일 2014년05월22일 10시55분
하빈창(河濱倉)
 
 하빈창(河濱倉)은 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현내리(縣內里)에 존재했던 조선시대 관창(官倉)이었다. 하빈창의 흔적은 『여지도서』 『대구읍지』 『해동지도』 『영남여지』 등에 남아있다. 조선후기 대구는 하빈현(河濱縣)·수성현(壽城縣)·해안현(解顔縣)·화원현(花園縣)·풍각현(豊角縣) 5곳의 속현(屬縣)을 두었다. 각 속현에는 하빈창(河濱倉)·수남창(壽南倉)·해안창(解顔倉)·화원창(花園倉)·풍각창(豊角倉)을 두어 국가의 세곡(稅穀)과 진휼미(賑恤米)·군량미(軍糧米) 등을 보관하였다.
 『대구읍지』를 보면 하빈창에는 쌀 878석 13말, 콩 85석 14말, 피잡곡(皮雜穀) 3,914석 9말이 보관되었다. 1석은 1섬과 같은 단위로써 두 가마를 뜻하는데, 두 가마는 160kg이 된다. 하빈창에 보관된 쌀, 콩, 피잡곡을 합친 4,877석은 요즘 주로 유통되는 20kg 포대로 계산하면 무려 39,016 포대가 된다.
 하빈창에 보관된 양곡(糧穀)에는 용도에 따라 이름을 달리 하였는데, 이를테면 원회미(元會米)·진색미(賑色米)·공작미(公作米)·북관래전미(北關來田米)·훈국미(訓局米)·상청미(常廳米)·순영구관미(巡營句管米)·별회미(別會米)·통영미(統營米) 등으로 구분이 되어 보관되었다.
 하빈창에서 암행어사(暗行御史)가 순행을 하고 남긴 시(詩) 두 편이 전한다. 두 편의 시에는 하빈현(다사읍·하빈면) 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집 떠난 나그네의 고달픔이 잘 나타나있다. 암행어사는 조선시대 왕명을 받고 비밀리에 지방군현을 순행하면서 악정(惡政)을 규명하고 민정을 탐문하여 사실대로 복명하는 것을 직무로 하는 임시관직으로 수의(繡衣) 또는 직지(直指)라고도 하였다.
 암행어사로 하빈현에 당도한 반고 김시진(盤皐 金始振, 1618~1667) 선생이 하빈창에서 시를 남겼다. 반고 선생은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백옥(伯玉), 호는 반고(盤皐)이다. 선생은 인조22년(1644)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라도관찰사·한성부좌윤·수원부사·호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아래 시는 반고 선생의 시 「하빈창」이다.
 
江頭古縣號河濱(강두고현호하빈): 강이 에워 산 옛 고을 이름이 하빈인데,
客路??歲向新(객로초초세향신): 나그넷길 멀고먼데 새해가 가까웠네.
七十南州行欲遍(칠십남주행욕편): 영남 칠십 고을 두루 다 다니자하니,
繡衣?馬亦酸新(수의총마역산신): 수의(繡衣)도 말(馬)도 또한 모두 고생이로다.
 
 다음으로 암행어사로 하빈창을 순행한 호곡 남용익 (壺谷 南龍翼,1628~1692) 선생도 하빈창에서 한 편의 시를 남겼다. 호곡 선생은 본관은 의령이며,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곡(壺谷)이다. 선생은 효종7년(1656)에 문과에 장원하였으며, 좌참찬·예문관제학·예조판서·대제학·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에 『호곡집(壺谷集)』 등이 전한다. 다음은 호곡 선생의 시 「하빈창」이다.
 
何年繡衣過河濱(하년수의과하빈): 어느 해에 암행어사가 하빈을 지나갔나,
楣上題詩墨尙新(미상제시묵상신): 문설주 위에 섰던 제시(題詩) 먹빛 아직 새롭네.
此味已應先我識(차미이응선아식): 이 맛을 응당히 나보다 먼저 알았구나,
客行無處不酸辛(객행무처불산신): 나그넷길 어디엔들 고생스럽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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