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문씨 세거지는 어디서든 봄”
약 이만여권의 고서와 함께 ‘삶의 여유’ 시나브로 느낄 수 있어
- 달성관광 나들이, 제3코스 ‘남평문씨(南平文氏) 세거지’
봄 여행은 물감을 푼 듯 파란 하늘 위에 떠다니는 솜구름이 손을 뻗으면 닿을듯한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선사한다.
본보는 봄을 맞이하여 달성군을 대표하는 레포츠 문화시설 및 나들이 코스를 5부로 나눠 연재하며, 그 세 번째 코스로 ‘육신사’, ‘마비정 벽화마을’에 이어 ‘남평문씨 세거지’를 소개한다.

화원읍 본리리에 위치한 남평문씨 세거지는 화원교 바로 앞에서 좌회전한 후 3㎞를 가다 보면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남평문씨 세거지는 인흥마을이라고도 불리며, 고려말 중국에서 목화씨를 가져 온 문익점의 18대손이자 대구 입향조(入鄕祖) 문세근의 9대손인 문경호와 남평문씨 일족이 18세기 초부터 터를 잡고 대를 이어 살아온 집성촌으로 고종 9년에 조성됐다.

사실 원래 이곳은 절이 있던 명당터였다고 한다. 보각국사 일연이 인흥사에서 11년간 머무르며 삼국유사의 뼈대를 완성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일화이며, 인흥마을 곳곳에는 아직까지 석탑의 잔해가 남아있다. 이러한 터에 남평문씨 일족이 들어온 후 터전과 도로를 반듯하게 열어 세거지를 만들고 주거지의 도로에 면한 부분에는 토담을 쌓았다. 지금은 조선시대 말에 지은 아홉 채의 전통한옥과 정자 두 채 등 총 11호 54동의 고택이 자리하고 있으며,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도로망이 편리하게 정리되어 있다. 또한, 남평문씨 세거지는 1995년 5월 12일에 대구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총 11,701㎡에 이르는 큰 규모를 자랑한다.

유서 깊은 남평문씨 세거지를 마주한 첫 느낌은 비슬산 자락의 천수봉 기슭 양지바른 서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어 대부분의 땅은 비옥한 농경지로 쓰이고 그 중심에 가옥이 형성되어 있는데 온 동네에 햇볕이 내리쬐면 따스함을 가득 담아낼 것만 같았다. 특히 우물 정(井) 혹은 ‘ㅁ’모양으로 반듯하게 고택이 즐비하고 있어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정갈함을 더하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때는 공기가 청명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이른 아침이었지만, 동네 주민들은 이앙기로 논에 모를 심거나 밭농사에 집중하는 등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된 듯하였다. 특히 남평문씨 세거지 마을 초입에 서 있는 수령이 300년 정도 된 커다란 회화나무는 마을의 역사를 소리 없이 나이테에 새기고 있었으며, 한눈에 봐도 절개와 기상이 느껴졌다.

이곳의 주목할 만한 고택으로는 수봉정사와 광거당, 인수문고 등으로 수봉정사는 남평문씨 세거지의 대표적인 건물로 마을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수봉정사는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기도 하고 일족의 모임이 열리던 큰 고택으로 건물 앞채에는 ‘수봉정사"(壽峰精舍), 뒤채에는 ‘수백당"(守白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특히 앞마당 중앙에 둥글게 흙을 돋워 소나무 고목을 심고 담장가로는 화단을 조성하여 아름다운 정원이 일품이다. 수봉정사는 얼추 둘러보아도 빈틈없는 야무진 주인의 손길이 전해진다. 오래된 대청마루에서 기둥과 서까래를 감상하며 여유를 느낄 수 있었고 아직 이런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 일이었다.
수봉정사를 빠져나와 들어간 광거당(廣居堂)은 1873년 후은공과 문성공이 중국 서적 수천 권을 수집하여 세웠다고 하며, 이후 문중의 자제들을 위한 공간으로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양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인흥마을엔 조선 유학자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특히 광거당과 수봉정사는 전국의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찾아와 학문과 예술을 논했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고 망국의 아픔을 토로하는 시국 토론장으로 활용되기도 해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인수문고(仁壽文庫)는 국내에서 찾아보기 드문 문중문고로 규장각 도서를 포함한 1만여 권의 고서와 문중의 보물을 보존하던 곳이다. 남평문씨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고서를 소장한 문중으로 손꼽히며, 특히 보통 고서의 경우 1책이 2, 3권 분량이다 보니 8,500책을 권 단위로 환산하면 약 2만여 권에 달하는 엄청난 양을 자랑한다. 또한, 우리나라 서원 가운데 가장 많은 장서를 지니고 있다고 알려진 안동 도산서원의 장서가 약 4,400책인데 남평문씨 집안 소유의 도서가 도산서원보다 약 두 배가량 많으니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남평문씨 세거지에서 가장 눈여겨본 점은 나지막한 토담이다. 토담은 돌을 얹고 흙을 쌓은 것을 반복한 것으로 오랜 시간 풍화를 거쳐 자연적으로 다듬어져 향토적인 멋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끝 모르게 흙빛이 펼쳐져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또한, 토담은 고즈넉하고 정갈한 고택에 어울리는 자태를 지니고 있으며, 토담을 카메라에 담고 이를 보며 연신 감탄하는 사진 동호회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세거지의 토담에 흠뻑 빠져 마을을 크게 둘러 옆으로 걸어가자 장대한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 소나무 숲을 보고 있자니 마치 역사의 고된 풍파와 세월에 꿋꿋이 서 있는 수호수처럼 어딘가 모르게 아릿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현재 문희갑 前 대구시장은 은퇴 후 고향인 남평문씨 세거지에 거처를 두고 지인들과의 교류를 가지며, 아이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는 훈장선생님이 되어 줄곧 고향 마을을 지키고 있다. 남평문씨 세거지는 언제나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으며, 고택은 한옥을 즐기고 소중한 가치를 나눌 소중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배소영 기자(hindor@dsmea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