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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장서운동

등록일 2014년01월17일 09시24분
 파리장서운동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될 무렵 우리나라 유림(儒林)대표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작성한 사건이다. 한국유림대표가 보낸 독립청원서인 파리장서는 전국 유림대표 137명이 연서한 것으로 전문이 1,463자에 달하는 장문이다. 3ㆍ1독립운동이 종교계가 주도한 전국적인 독립운동이라면 장서운동은 유교계가 주동한 독립운동이었다.
 당시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선정된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은 장서를 짚신으로 엮어서 중국 상해로 가져갔다. 상해임시정부에서는 다시 이것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한문 원본과 같이 3천부씩을 인쇄하여 파리강화회의는 물론 국내 각지와 중국에 배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면우 곽종석을 비롯한 수많은 유림들이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파리장서운동은 영남 유림의 영수 곽종석 선생과 호서 유림의 영수 김복한 선생이 손을 잡고  합작한 독립운동이었다. 유림 대표들의 독립운동은 4월 2일 경북 성주의 만세시위 때 이와 관련된 성주의 유생들이 체포됨으로써 일본 관헌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이 완강히 비밀을 지켰기 때문에 활동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고 곽종석 김창숙 장석영 송준필 선생 등 20명만이 노출되어 체포당했다. 그 후에 상해에서 각 고을 향교로 발송한 한문 파리장서가 발각됨으로써 137명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졌다.
 장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고 한국의 광복을 세계에 호소함과 동시에 일제강점의 부당성과 일본제국주의의 잔학상을 세계만방에 폭로하며 세계 여론에 한국의 존재를 각인시켜 한국의 독립을 도모(圖謀)하고자 하였다.
 한국유림대표 137명 중에는 다사지역 출신인 박순호 선생과 김용호 선생 두 분이 참여하였다. 박순호(朴純鎬,1873~1934) 선생은 자는 덕문(德文) 호는 덕암(德巖) 본관은 밀양이다.  임재(臨齋) 서찬규(徐贊奎)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선생의 묘는 매곡리에 있으며 묘갈명(墓碣銘)은 창산(昌山) 성기운(成璣運)이 찬(撰)하였다. 저서로 덕암문집(德巖文集)이 전하며, 2004년 건국포장(建國褒章)이 추서되었다. 김용호(金容鎬, 1853~1924) 선생은 자는 원거(元?) 호는 일암(一菴) 본관은 김해이다.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문하에서 사사(師事)하였다. 저서로는 일암문집(一菴文集)이 전하며 선생의 유업(遺業)을 기리기 위해 후손이 건립한 학화재(鶴和齋)가 있다. 2003년 건국포장(建國褒章)이 추서되었다.
 한국유림의 파리장서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73년부터 전국 각처에 파리장서비가 세워지고 있다. 1973년에 서울 장충단공원내 장서비를 시작으로 1992년에는 경남 밀양시 영남루 인근에 장서비가 세워졌다. 1977년에는 대구상인동 월곡역사공원과 경남 거창군 거창공원에 장서비가 각각 건립되었다. 그 외에 충남 홍성군, 전북 정읍시, 합천군 일해공원에 장서비가 건립되어 있으며 현재 경북 봉화군에서 장서비 건립이 추진 중이다.


다사향토연구소장 최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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