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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교육의 역사

등록일 2013년07월22일 10시05분
다사교육의 역사
 
다사지역에 교육기관이 언제 처음 존재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중국 송나라 사람 서긍(徐兢, 1091~1153)이 고려를 방문하고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을 보면 "여염집들이 있는 거리에는 경관(經館)과 서사(書社)들이 두셋씩 마주 바라보이고 이곳에 백성들의 자제들이 무리로 모여 스승에게 책을 배우며, 조금 장성하면 절간으로 가서 글을 익힌다."는 구절이 있다. 이는 사찰이 오래전부터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한 것을 알 수가 있다.

현재 서당골이라 불리는 이천리(伊川里) 선사(仙査)에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古刹) 선사암(仙査庵)이 있었던 곳이다. 선사암은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 선생이 머문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고운 선생이 머물렀다는 선사암에는 벼루를 씻었다는 세연지(洗硯池)가 있다. 세연지가 있었던 선사암이 다사지역의 최초 교육기관이 아니었나 추측이 된다.

다음으로 다사 문양리 출신으로 1570년에 사마시에 급제한 임하 정사철(林下 鄭師哲,1530~1593) 선생이 선조20년(1587)에  최고운 선생이 머문 곳에 선사서사(仙査書社)를 지어 강학소를 열었다. 임하 선생은 한강 정구(寒岡 鄭逑) · 동강 김우옹(東岡 金宇?) 등과 교유하였다. 선생은 선사서사에서 송재 주신언(松齋 朱愼言) · 계동 전경창(溪東 全慶昌) · 낙재 서사원(樂齋 徐思遠) 등과 성리학을 연구하며 강학하였다.

선사서사가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리자 청안현감(淸安縣監)을 지낸 낙재 서사원(樂齋 徐思遠, 1550~1615) 선생이 선사서사 터에 선사재(仙査齋)를 지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낙재는 대구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 · 괴헌 곽재겸(槐軒 郭再謙) · 모당 손처눌(慕堂 孫處訥) 등과 교유하였다. 낙재 문인으로는 낙포 이종문(洛浦 李宗文) · 대암 최동집(臺巖 崔東集) · 지암 도신수(止巖 都愼修) 등 총 113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서원은 중종38년(1543)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 말 학자 안향(安珦)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하여 경상도 순흥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창건한 것이 그 효시이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사설교육기관으로 전국적으로 건립되었다. 다사지역에는 인조17년(1639)에 창건한 이강서원, 숙종34년(1708)에 창건한 용호서원, 정조10년(1764)에 창건한 금암서원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근대교육(近代敎育)은 1880년대부터 1945년 8 ·15광복까지를 말한다. 다사의 근대교육 기관으로는 전통적인 한학 교육기관이었던 매곡서당, 죽곡서당 등이 당시까지 남아있었다. 그리고 다사초등학교의 전신인 다사공립보통학교가 1934년에 개교하였다. 한편 1951년 미국인 선교사가 매곡리에 다사교회를 설립하여 교육기관 역할을 하였다.

다사지역은 교육을 중요시하는 지역답게 타지역보다 한 발 앞서 1949년에 류팔걸 · 이재원 선생이 중등교육기관인 다사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였다. 고등공민학교는 1953년 3년 1일 정식으로 다사중학교로 인가를 받아 1954년 3월 3일에 처음 33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설립 초기에는 고령군 · 칠곡군에 거주하는 학생과 성서 지역의 학생이 상당수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1975년에 개교한 다사고등학교는 현재 대구의 명문 고등학교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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