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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심이 놓은 해랑교의 전설

등록일 2013년05월20일 19시54분

효심이 놓은 해랑교의 전설

나의 고향은 다사읍 박곡리이다.
옛날 홍수로 천지개벽이 되었을 때 마을 뒷산이 박을 엎어 둔 만큼 남기고 물에 잠겼다하여 박산이라 불렀으며 그 앞 마을을 ‘박실 또는 박곡’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박곡리 마을 앞산 너머에 있는 마을은 ‘해랑포 또는 해랑개’라 불렀다. 지금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옹심이 칼국수’ 본점이 있는 마을로 더 유명하다.

 해랑마을에서 방천리를 잇는 해랑교에 대한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해랑교가 있기 훨씬 오래전, 그 부근에 돌 징검다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도깨비 징검다리라 불렀다. 아무리 심한 홍수가 나도 떠내려가지 않아 도깨비가 만든 돌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 역사 자료에 의하면 금호강 하류 부근에 달천진이라는 나루터가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26권”에 실린 문헌에 의하면 ‘달천진은 하빈현에서 동으로 16리에 있는데 금호의 하류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어느 날 그곳에 부산에서 여자 아이와 과부가 함께 들어 왔다. 하루 끼니조차 의지할 곳이 없었으나 마을 후한 인심 덕분에 한 달포를 지내다가 호구지책으로 나루터에 주막을 차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마을사람들은 바다에서 소금배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하여 그녀를 해랑(바다海,계집娘)어미라 불렀다. 10년 동안 열심히 일하여 많은 돈을 벌어 딸 해랑을 혼인시켜 데릴사위를 맞이했다. 강 건너 편에 있는 땅도 사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가운데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니 처량함이 있었다.
 그러던 중 강 건너 땅에 농사를 지으면서 그곳에 사는 홀아비가 아낙네 혼자서 매일 힘겨운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겨 종종 일손을 도와주었다. 서로 신세를 위로하며 시간이 갈수록 연정이 커져 밤에 몰래 만나곤 했다. 밤에 자주 외출을 하는 어머니를 이상하게 여긴 해랑이 남편과 함께 뒤따라가니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 있으면 날씨가 추워져 어머니가 강을 건너면서 발이 시릴 것을 생각하니 걱정된 해랑은 남편과 함께 돌다리를 놓기로 했다. 며칠 만에 돌다리가 완성되고 해랑어미는 편하게 강을 건너 정인을 만날 수 있었으며, 마침내 두 사람은 재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며칠 밤 사이에 만들어진 다리를 도깨비가 밤에 몰래 놓은 것이라 하여 도깨비 징검다리라 불렀고 나중에 해랑이 놓은 것을 알고, 효행으로 놓인 다리로서 부모에 대한 해랑의 효성을 널리 알리고 기리기 위해 해량교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이런 애절한 사연을 담은 징검다리는 없어지고 이후 새로 다리를 놓을 때 해랑교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다리 이름이 해량교라는 유래가 전해온다.

 어머니 손잡고 산모퉁이 돌아 과수원 길을 지나고, 은빛 백사장이 펼쳐진 강가의 나룻배를 타고 강물에 비춰진 내 얼굴을 보며 서재초등학교에 입학했던 45년 전의 일이 생생히 기억난다. 와룡산에 기거한다는 키다리 거지 아저씨의 모습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가 기억하는 나루터는 서재리 성주사 아래에 물을 퍼 올리는 펌프장이 있는 곳이 위치해 있었고, 뱃사공 아저씨가 추운 날에 언발을 녹인다고 오줌을 누는 장면도 아스름하게 저장되어 있다, 나루터 50m 위로 돌로 놓은 징검다리가 그 당시에도 있었고 겨울에는 물이 얕아 친구 2명과 건너려다 물살에 떠밀려 혼이 난적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해랑개 앞 마을에 포구가 있어 그 당시 학생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고 거슬러 올라가면 대구를 가는 통로였다. 해랑과 해랑포마을은 역사적 스토리가 이름만큼이나 예쁘게 잘 간직되어  있다.

 강원도 정선에 가면 아우라지 처녀상이 있고, 춘천 소양강에는 소양강 처녀상이 있다.
또한 경남 함안군 대산면 낙동강 지류 샛강에는 처녀 뱃사공 상이 있다.
해량교의 도깨비 징검다리를 모티브로 한 해랑 모녀의 조형물을 만들면 스토리텔링의 관광자원화와 금호강 자전길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 시키지 않을까?
우리지역에 남아있는 역사와 전설을 발굴하고 지역자원을 활용하여 지역사회의 고유성을 부각시키고 새로운 관광 콘텐츠를 개발하여 축제로 승화시켜야 한다.

 금호강을 따라 옛 선조들의 살아 온 이야기가 흐르고, 복원된 나루터와 주막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유람선도 다니고, 이웃한 지역 간 문화와 역사의 소통으로 함께  축제도 열린다.
강은 이제 단절이 아니라 예 선조들과 삶의 소통이며, 이웃 지역과도 역사와 문화가 통하는 공간이 된다. 금호강은 ´보여 지는 물길´에서 ´이용하는 물길´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야한다.
곧 축제가 시작되도록 지역민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사를 주말마다 축제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초대하자!

다사지역발전연구소 소장 정군표
경영학박사/관광경영.관광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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