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환율 1,510원 돌파·증시 폭락… 벼랑 끝 한국 경제
_ 시장 예상 훌쩍 넘은 25조 규모… "인플레 자극할라"
_ 6월 지방선거 앞둔 선심성 돈 풀기 경계해야
코스피 중동 전쟁 확전 공포에 5400선까지 하락한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서울=더피플매거진] 중동발(發) 지정학적 위기로 국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요동치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25조 원 규모의 이른바 '전쟁 추경(추가경정예산)'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유가·고환율로 인해 가뜩이나 물가 상승 압력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 투입이 오히려 '인플레이션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경제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초 취지와 달리 선심성 경기 부양책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국내 금융시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폭격 최후통첩과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전면 폐쇄 맞대응이라는 '확전 공포'에 휩싸이며 패닉 장세를 보였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6.49% 폭락한 5405.75로 마감하며 매도 사이드카까지 발동됐다. 원·달러 환율은 하루 만에 16원 이상 치솟으며 2009년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인 1,510원대를 돌파했다. 국제유가(브렌트유) 역시 배럴당 110달러 수준까지 폭등하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목을 조르고 있다.
서민 체감 물가인 외식비는 이미 붉은불이 켜졌다. 자장면, 삼겹살, 비빔밥 등 주요 외식 메뉴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크게 뛰었고, 조류인플루엔자(AI) 등 3대 가축전염병까지 확산하며 밥상머리 물가를 위협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하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마저 제기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복합 위기 속에서 당정청은 이르면 4월 10일 국회 처리를 목표로 25조 원 규모의 추경을 신속 편성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이는 당초 시장에서 예상했던 15조~20조 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 이후 역대 세 번째 규모에 해당한다.
청와대는 "소득 하위 50%에 1인당 15만 원씩 지급한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지만, 25조 원이라는 막대한 유동성이 시중에 풀릴 경우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대외 변수로 인한 물가 불안이 극심할 때 재정을 대거 풀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25조 원 규모면 단순히 취약계층 지원을 넘어 사실상 경기부양 성격이 강한 추경"이라며 "이런 방식으로 재정을 풀면 단기적 효과는 있어 보일 수 있으나 결국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또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초기에 재정을 과감하게 투입하는 건 향후 닥칠 위기에 대응할 정책 여력을 스스로 줄이는 것"이라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추경이 물류·유류비 경감과 취약계층 보호라는 본래의 목적에만 '핀셋 지원' 형태로 집중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이 심상치 않고 유가가 뛰면서 물가 상승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유가 상승으로 생업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집중하는 추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허 교수는 정치적 셈법이 개입될 여지를 우려했다. 그는 "추경을 하다 보면 패키지가 커지며, 6월 지방선거가 있기 때문에 한편으론 (규모 확대가) 이해가 되기도 한다"면서도 "처음 의도와 달리 일반적인 경기부양형 추경이 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조차 "25조 원 정도면 상당히 큰 규모"라며 "취약계층과 지방을 중심으로 우선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전례 없는 중동발 복합 위기 속에서 취약계층을 보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타당하다. 하지만 고물가·고환율이라는 거대한 산불이 번지는 와중에 '25조 원'이라는 거대한 재정을 쏟아붓는 것이 불을 끄는 물이 될지, 화력을 키우는 기름이 될지 정부의 더욱 정교한 거시경제 운용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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