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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부부별곡 _ 우보 만보(漫步) : "유정하다가도 합거하면 무정해지는 것이 인생사"

등록일 2026년03월23일 12시22분

부부별곡 _ 우보 만보(漫步)

 

 

수필가 , 하종혁 수필가 _ 하종혁

 

유정하다가도 합거合居하면 무정해지는 것이 인생사랍니다.”

 

오래전에 해인사 희랑대에 계셨던 혜암 스님(19202001)이 하신 말씀이다. 아내가 혼인 전에 더러 뵙던 분이라며 소매를 끄는 바람에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일찍이 답사를 핑계 삼아 이름난 절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조계종 종정을 지낸 당대의 고승과 한자리에 앉으니 절로 주눅이 들었다.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요긴한 일로 뵌 것도 아니었는데 스님이 무슨 연유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남남으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어 한평생을 같이 산다는 게 어디 녹록한 일이겠나. 나도 초년부터 아내와 어지간히 다퉜다. 그놈의 돈 때문에, 고약한 술버릇 탓에, 아내가 시집 식구를 타박한다고. 결혼하고 삼십 성상을 훌쩍 넘기고서도 여전히 그 횟수가 줄지 않으니 한심하다. 그냥 지나쳐도 될 일에도 걸핏하면 큰소리를 낸다. 다만 다툼이 오래가지 않고 불길이 오를만하면 누구든 한쪽이 슬쩍 물러서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십수 년 전이었다. 아내가 근무처를 김천으로 옮기게 되었다. 매일 두 시간 남짓 운전을 해야 할 판이라 딱한 노릇이었다. 직장의 형편마저 녹록지 못하다기에 당분간 자그만 방이라도 한 칸 얻어 지내면 어떠냐고 넌지시 떠봤다. 그런데 어럽쇼, 아내의 반응이 영 딴판이다. 도대체 마뜩잖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숫제 눈물까지 글썽이며 대드는 게 아닌가. 여태 잘 부려 먹고는 이젠 아예 헌 물건 취급한다나? 기가 막혔다. 치미는 부아를 겨우 삭이며 달래 봐도 소용없었다. 내 딴에는 이참에 집안의 살림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요량으로 마음먹고 한 말이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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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대여섯 해쯤 될 무렵이었나. 아내가 의성의 단밀면으로 발령이 났다. 첫아이를 낳고 터울이 많이 떠서 오랫동안 애를 태운 끝에 어렵게 둘째를 가졌을 때였다. 곧장 방을 얻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던 모양인데, 내가 선뜻 나서지 않아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른다는 말을 여태껏 되뇐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여자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집에서 다니라고 하면 내 편한 꼴을 못 본다며 눈을 흘기고, 나가 있으라면 찬밥 취급한다고 투덜댄다. 어차피 원망만 돌아올 바엔 아예 입을 닫을 수밖에. 그러면 또 말 안 한다고 난리다. , 그러니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한바탕 소동을 겪은 다음 나는 두 번째로 주말부부가 되었다. 누가 늘그막에 주말부부로 사는 사람은 생전에 나라를 구한 공이 있다고 하는 바람에 혼자 실없이 웃었다. 그런데 가관인 건 처음엔 길길이 뛰던 아내도 언제부턴가 혼자만의 시간을 은근히 즐기는 눈치다. 나 역시 너른 침대를 활개 치며 쓰니 개운한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고. 주말에 얼굴 맞대면 옆구리가 허전하더라는 말을 짐짓 주고받지만 아무래도 그냥 하는 소리 같다.

 

그렇지만 아내의 빈자리를 사뭇 메울 수는 없다. 거실 바닥엔 잔모래가 사각사각 밟히고, 화장실 변기 주위엔 안주인이 없는 표가 금세 난다. 아내가 쓰지도 않는 내실에도 온통 머리카락 천지고. 나는 아들 녀석의 귀가 시간을 기다리며 밤잠을 설치는 날이 잦다. 하루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몸을 뒤척이는데, 휴대전화의 문자 도착 소리가 그날따라 크게 울린다.

 

마누라가 없으니 얼마나 좋겠소. 살판났겠지.’

 

마치 곁에서 내 심사를 훤히 들여다보며 하는 소리 같아 흠칫했다. 전화기를 밀쳐놓고 그냥 자려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휴대폰의 어스름한 불빛에 더듬더듬 마음을 실어 보낸다.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건 이 내 심사

 

어쨌거나 당분간은 별거 생활을 이어가야 할 판이니, 이제는 새삼스레 우리 사이가 유정해지려나, 혼잣말을 해가며 헛웃음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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