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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밤나무 _ 우보 만보(漫步)

등록일 2026년03월09일 12시41분

나도밤나무 _ 우보 만보(漫步)

하 종 혁

나도밤나무 _ 우보 만보(漫步) : 더피플매거진

 

식물의 이름에 너도또는 나도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모양이나 식생이 다른 식물과 비슷할 때 그리한다.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이런 식으로 말이다. ‘나도밤나무너도밤나무라는 이름 또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나도밤나무에 얽힌 이야기다. 율곡 선생이 강릉 노추산 중턱의 이성대二聖臺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한 도사가 그 앞을 지나다 선생의 관상을 보더니 호환虎患에 갈 팔자라 하였다. 선생은 걱정이 된 나머지 어쩌면 좋으냐고 묻자, ‘밤나무를 천 그루 심으면 연명할 수 있다.’ 하고는 사라졌다. 도사가 떠난 뒤 선생은 천 그루의 밤나무를 심었다. 얼마 뒤에 도사가 다시 찾아왔기에, 율곡 선생은 밤나무를 하나하나 세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천 그루에서 두 나무가 모자라는 게 아닌가. 도사는 약속과 다르다고 하면서 범으로 변신하여 선생을 해치려 했다. 이때 옆에 있던 밤나무 비슷하게 생긴 나무가 나도 밤나무라고 소리쳤다. 그래도 한 그루가 모자라지 않느냐고 다그치자, 나도밤나무가 옆에 있던 나무를 가리키며 너도 밤나무잖아라고 억지소리를 해 천 그루를 채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범에게 입을 화를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김윤식(18351922)은 개항기에 영선사를 이끌고 청나라에 다녀온 온건개화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경술국치때 한일 병합에 찬성함으로써 일제로부터 자작子爵의 작위와 막대한 은사금을 받았다. 그런 김윤식이 3·1운동 때에는 독립 청원서를 제출한 사건으로 작위를 박탈당하고 두 달 동안 투옥을 당한 일이 있었다. 그 사건 때문에 그가 죽은 다음 사회장을 해야되냐 마냐를 두고 민족운동 진영이 분열되는 사단이 일었다.

 

불가불가不可不可’. 이는 한일 병합이 선포되기 열흘 전의 어전회의에서 김윤식이 한 말로 전해진다. 말인즉 옳지 않소, 옳지 않소不可 不可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고, 또는 어쩔 수 없이 찬성하오不可不 可라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후일 그가 일제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과 경학원 대제학에 임명되었고, ‘학의 머리칼과 은빛 수염을 가진 신선과 같은 유학자라는 칭송을 들었다는 사실을 곱씹어 보면 그의 속마음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불가불가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 속에는 격동의 근대사 그 한복판에서 득의와 좌절을 함께했던 김윤식의 인간 됨됨이가 녹아 있다. 그도 종국에는 밤나무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처부모가 될 분들을 처음 뵙는 자리에서였다. 혼기가 꽉 찬 맏딸이 생떼를 부리는 바람에 내키지 않는 자리에 심드렁하게 앉은 장모님과는 달리 장인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심지어 서두르는 기색마저 역력했다.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살피시더니 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곧장 묻는 것이었다.

 

구경하具慶下신가?”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당황한 아내는 탁자 아래로 손을 슬며시 뻗었다. 무언의 신호를 보내려는 듯했다. 나는 아내의 팔을 슬쩍 당겼다. 부모님이 모두 계시냐고 묻는 말씀이니, ‘자시하慈侍下올시다.’ 하면 될 일이었다.

 

어머님 홀로 계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십여 년 전에.”

 

당신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건성으로 이것저것 몇 마디를 더 물으시고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만 됐네라는 말씀이 내 귀에는 마치 너도밤나무라는 말씀으로 들렸다. 가슴은 세차게 방망이질하고 있었지만 당신 곁에 앉은 장모님의 파리해진 얼굴을 똑바로 보기가 민망하여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아버지는 말수가 많지 않으셨다. 집 밖에서는 여러 사람 앞에서 너털웃음을 곧잘 터뜨리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자식들에게는 살가운 말씀조차 인색했던 분이다. 내가 아버지께 이따금 들은 말이라고 해야 고향이니 양반이니 하는 조각난 말씀이 고작이었다.

 

그런 아버지께서 마음먹고 내 어깨를 토닥거려 주신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비록 다듬어지지 않은 획일망정 한자로 지방을 써서 제사를 모셨을 때였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겨우 열 살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객지를 떠도느라 정작 당신에게는 그렇게 갈구하던 배움의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던 차에 비록 자식에게서나마 장래의 희망을 보셨던 것 같았다. , 조금만 더 오래 계셨더라도 그 정도의 기쁨은 더러 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사십 년의 세월 저쪽에 계신 아버지께 나직이 여쭙는다.

 

아버지, 이제는 저도 밤나무 축에 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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