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법관의 양심’이 독단이 될 때, AI 판사의 도입을 고민한다
더피플매거진 대표 조여은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이토록 논쟁적인 판결문이 있었던가. 최근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 대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1심 선고(재판장 이진관)는 법치주의의 엄정함보다는, 법관 개인의 가치관이 법적 안정성을 압도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징역 23년이라는 중형의 근거가 법률의 문언보다 재판부의 역사관과 사상적 훈계로 채워졌다는 비판 앞에서, 우리는 이제 ‘인간 판사’가 가진 재량권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형법 제87조의 해석을 넘어 ‘위로부터의 내란(친위 쿠데타)’이라는 개념을 설시했다. 기존 대법원 양형 기준이 ‘아래로부터의 내란’만을 상정하고 있어 본 사건에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해석이다. 법관의 역할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을 엄격히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지, 판결을 통해 새로운 범죄 구성 요건을 창설하거나 양형 체계를 자의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부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과거와 다르다"는 정무적 판단을 양형의 주요 근거로 삼았다. 국가의 위신 추락에 대한 안타까움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이 형사 처벌을 가중하는 직접적 요건이 될 수 있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법률적 요건보다 판사가 인지하는 시대적 상황 논리가 형량을 좌우한다면, 이는 예측 가능한 법치주의 시스템이라기보다 판사 개인의 ‘시대관’에 따른 단죄에 가깝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판결문 곳곳에 드러난 주관적 표현들이다. "가슴 깊이 죄송하다는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거나 피고인의 진술 태도를 자의적으로 규정하는 대목은 내심의 영역을 과도하게 재단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재판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특정 사회 현상이나 세력을 언급하며 훈계조의 비판을 덧붙인 것은, 판결문이 법리적 판단을 넘어 개인의 정치·사회적 소신을 표출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에 왜 ‘AI(인공지능) 재판’ 도입 논의가 필요한지를 웅변하고 있다.
첫째, AI는 ‘시대적 감정’을 양형에 섞지 않는다. 인간 판사는 여론이나 개인의 신념에 따라 양형 기준을 이탈할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AI는 오직 법조문과 축적된 판례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론을 도출한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주관적 인상은 데이터의 영역에서 배제된다.
둘째, 사법의 예측 가능성을 복원할 수 있다. 징역 23년이라는 이례적인 수치가 법리적 계산보다 판사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의구심이 드는 상황에서, AI는 방대한 형량 데이터를 분석해 죄질에 비례하는 객관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다. 판사의 성향에 따라 피고인의 운명이 달라지는 소위 ‘사법 복권’ 논란을 잠재울 대안이다.
셋째, 사법 판단의 중립성 확보에 기여한다. 판결문 내에서 특정 세력을 비판하거나 사회적 갈등 요소를 언급하는 행태는 AI 시스템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자의적 용어 선택이나 확장 해석의 오류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진관 재판장은 판결문 말미에 우리 사회의 갈등을 우려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은, 법을 해석함에 있어 법관의 재량이 과도하게 개입될 때다. 판사가 법전 위에서 역사를 심판하려 한다는 인상을 줄 때,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판결은 인간 법관의 고유 권한인 ‘양형 재량’과 ‘자유심증주의’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과제를 던졌다. 감정이 배제된 차갑지만 공정하고, 무엇보다 일관된 AI의 법 집행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