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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의 꿈 _우보 만보(漫步)

등록일 2025년11월15일 12시52분

서동의 꿈 _우보 만보(漫步)

 

수필가 , 하종혁 수필가 _ 하종혁

 

익산 땅을 처음 밟은 청년 시절이나 뻔질나게 답사길의 짐을 싸던 장년기에나 한결같이 내 눈길을 끈 것은 호남의 황토였다. 그곳에는 사방 어느 곳이든 야트막한 언덕이 불그스름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황토의 색조가 너무나 강렬하여 나는 이따금 그 붉은빛에 정신을 놓곤 했는데, 머릿밑이 희끗해진 황혼기가 되어 다시 찾은 이번에도 내 가슴은 어김없이 황톳빛으로 물들었다. 아직은 단풍의 색상이 또렷하지 않아 조금 아쉽기는 해도 황토밭과 황금색 들판의 조화를 어찌 단풍에 비하겠는가.

 

백제는 그 이름만으로도 처연하다. 일찍이 낙화암이며 황산벌 같은 우수 어린 지명이 우리네 기억에 너무나 또렷이 새겨진 탓이리라. 그렇지만 김부식이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다라고 한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백제 문화의 정수가 최근에 여럿 발굴되었다. 부여 능산리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나 익산의 왕궁리 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를 보면 그 격이 결코 고구려나 신라에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익산을 경주, 부여, 공주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고도古都로 부르기도 한다.

 

익산은 온통 무왕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이곳은 무왕의 꿈이 서린 곳이며, 그의 꿈이 좌절되면서 백제의 명운도 함께 가라앉았다. 그와 관련된 설화는 삼국유사의 기록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의 어머니가 마룡지의 용과 상관하여 서동을 낳았다든지, 서동이 신라의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극적인 이야기가 특히 그렇다. 얼마 전에 무왕이 태어난 곳이라 전해지는 연못가에서 백제 시대의 기와 조각이 발견되어 지금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되고, 햇볕에 바래면 역사가 된다라고 한 어느 작가의 말을 곱씹으며 역사와 문학의 차이를 가늠해 본다.

 

미륵사지는 백제 문화의 정수이다. 비록 폐사지일망정 그 규모나 디테일에서나 우리나라에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거의 없다. 절터는 백제의 전형적인 11금당 양식과는 달리 33금당의 독특한 구조인데, 가운데 목탑이 있던 자리는 그대로 비워둔 채 양쪽의 석탑만 복원하였다. 동탑은 수년간의 작업 끝에 9층 전부를, 서탑은 장장 이십여 년에 걸쳐 6층까지만 복원했다. 멀쩡하게 복원한 동탑보다 미완성 상태 그대로 복원한 서탑 주위에 훨씬 많은 사람이 북적이는 걸 보면 관람객들의 안목이 보통 아니라는 걸 알겠다. 서탑을 해체하는 도중에 사택이라는 성을 가진 왕비의 발원문이 나왔는데, 그러면 도대체 이 절터는 선화공주와 어떻게 연관되었던 것인지 더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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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에는 2기의 왕릉이 있어 오래전부터 쌍릉으로 불리었다. 백여 년 전에 일본인들이 졸속으로 발굴한 바 있는데, 이번에 우리네 손으로 제대로 발굴하였다. 그 결과 대왕릉은 어쩌면 무왕의 무덤일 수도 있겠다고들 한다. 하지만 소왕릉의 주인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여튼 왕릉임이 유력하여 이름도 백제왕릉원으로 고쳤다. 그렇다면 선화공주 설화는 여전히 생명력을 이어가게 된 셈이니 나는 그것을 도리어 다행으로 여긴다.

 

왕궁리 유적은 익산의 역사가 응축된 곳으로, 아직도 많은 사실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고조선의 마지막 왕인 준왕의 도읍이었다거나 마한의 중심지였다는 가설이 있고, 신라가 고구려의 왕족 출신 안승安勝을 보덕국의 왕으로 앉힌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며, 견훤(867936)이 후백제를 세워 도읍한 곳이라는 말 등 의논이 분분하다. 현재로서는 무왕이 건설한 별궁이었던 게 후대에 절터로 되었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한 것 같다. 이런 와중에도 삼십 년 넘게 이어진 발굴 덕택에 백제의 진면모가 조금씩이나마 드러나고 있는 게 반갑다.

 

오랜 발굴 작업으로 맨살을 드러내었던 왕궁리 유적지는 이제 푸릇한 옷으로 단장하여 제법 궁궐터다운 태가 난다. 그래도 잔디 아래엔 황톳빛이 여전할 것이다. 오층탑 앞에 나란히 늘어선 벚나무는 이파리를 모조리 떨궜다. 누군가 사나흘 전에 서리가 왔노라고 전갈하더니 어느새 절기가 이렇게 되었다. 지난여름에 늦더위가 하도 기승을 부려서 더위는 뒤통수도 보기 싫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그새 옷깃을 여미게 되니 인간사의 야살스러움이 이렇다. 언제 다시 이 자리에 서겠나. 출발을 재촉하는 소리에 떠밀려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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