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이 낳은 정학이 항일열사를 아십니까?"
-정학이 항일열사 탄신 100주년 기념식 개최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기회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출신 항일운동가인 정학이 열사는 1913년 9월 2일에 태어나 화원초(3회)를 졸업한 후,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계속 학업을 할 수 없게 되자 혈혈단신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일을 하면서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으며 조국독립을 위한 벽보를 작성하고 인쇄물을 살포한 혐의로 형무소에 수감된 후,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1934년 꽃다운 22세의 나이에 생일 마감한 대표적 항일 운동가이다.

최근 일본의 보수우익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과 망언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나라사랑이 절실한 시점에 "정학이 항일열사 탄신 100주년 기념식"이 정학이항일열사추모회(회장 우정택, 기념행사 추진위원장 정치돈) 주최로 9월 2일, 화원초등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김문오 군수, 배사돌 군의회 의장, 양원근 달성경찰서장, 남영종 달성교육지원청장, 구자영 대구향교 전교, 시의원 및 군의원, 군기관·사회단체장, 보훈단체장, 동래정씨문중, 대구향교, 성균관유도회원, 화원초등학교 동문, 재학생 등 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려 열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계승하고, 달성군 개청 100년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뜻 깊은 행사로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젊은 세대에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기회가 되었다.

기념식에는 그의 일대기를 담은 「정학이 항일열사 탄신 100주년 기념 추모집」이 공개되었고, 추모집에는 15세의 나이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동포의 인권보호단체를 결성하고 지하밀실에서 벽보를 작성하여 살포하는 등 항일운동을 벌이다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 정 열사의 항일운동 이야기가 자세히 담겨 있다.
기념식 식전행사는 소통과 환희를 주제로 열사의 후배들인 화원초등학교 문예반 학생들의 공연이 열렸고 대회장의 개회선언과 국민의례 후, 숙연한 분위기 속에 재학생들의 영정 훈장증 안치가 있었다. 김문오 군수를 비롯한 내빈들은 차례로 분향 및 헌화를 하며 열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렸다. 열사에 대한 일동 향배를 한 뒤, 술회가와 진혼무가 이어졌고 정치돈 추진위원장이 열사의 약력과 독립활동상을 소개했다. 열사의 후배들인 화원초 어린이들에 대한 시상, 대회장인 우정택 추모회장의 인사말, 기념사, 추모사, 추모시 및 헌시 낭송, 재학생 대표의 산문 "어머니께 쓴 편지" 낭독, 열사의 외손인 나종수 씨의 증언록과 감사말씀이 이어졌다. 옥외행사로는 일반인들의 동상 앞 분향 및 헌화, 한울북춤예술단의 북춤한마당, 이대규 화원초총동창회장의 삼세삼창을 한 후 행사의 끝을 맺었다.
정치돈 정학이항일열사추모회 추진위원장은 "정학이 열사는 일제의 모진 고문에도 조국을 위해 한 몸을 던졌다. 우리 후손들은 열사의 나라사랑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되며 영원히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으며 우정택 추모회 회장은 "열사의 일제에 대한 항거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나라사랑과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문오 군수는 "선열들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있고 오늘의 우리가 있다. 정학이 열사의 애국충정에 한없는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바치며 19만 달성군민 모두의 가슴에 열사의 나라사랑 정신이 이어지길 염원한다"고 말했다. 또, 배사돌 군의회의장은 "지금 우리들은 정학이 열사를 비롯한 선열들의 수많은 피와 땀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일제에 맞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한 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정학이 열사는 서거한 지 48주년이 된 1982년에 열사의 공훈이 확인되어 1986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았고 5년 후인 1991년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유해는 순국 후 화원 본리리 공동묘역에 묻혔다가 1991년 대전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2003년 1월에는 뜻있는 지역인사들이 열사의 순국정신을 선양하고자 모교인 화원초등학교 교정에 동상을 건립하여 어린이들에게 나라사랑의 정신을 심어주고 있다.
윤정 기자(hindor@dsmea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