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반전】
석유는 사막에서만 난다?
석유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세계의 변혁을 이끌었다. 석유(石油)를 뜻하는 영어 ‘petroleum’은 1556년 독일의 광물학자 게오르크 바우어가 쓴 학술 논문에서 최초로 사용됐다. ‘petroleum’은 암석을 뜻하는 그리스어 ‘petra’와 기름을 뜻하는 라틴어 ‘oleum’의 합성어. ‘돌에서 나는 기름’이라는 뜻이다.
석유는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5000년 전부터 이미 사용됐다. 고대인들은 석유를 우연히 발견했다. 샘물처럼 땅에서 조금씩 스며 나오는 석유를 불을 댕기거나 누수를 방지하거나 접착하는 데 사용했다. 의약품으로 몸에 바르기도 했다. 19세기까지 유럽인은 석유 표면에 뜬 물질을 떼어내 수공업에 썼다. 동양에서 제일 먼저 석유를 발견하고 사용한 나라는 중국이다. 1세기 말엽에 쓰인 《한서》에는 “연하(延河)의 지류 수면 위에 가연성의 액체가 있어 사람들은 이것을 불을 켜는 데 사용했다”고 나와 있다. 처음으로 석유라는 말을 사용한 사람은 송나라의 과학자 심괄(沈括)이었다. 그는 《몽계필담(夢溪筆談)》에서 “석유는 후세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필수품이 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세계적인 1차 오일쇼크는 1973년 10월에 일어났다. 당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아랍 국가를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 수출을 중단한 것이 원인이었다. OPEC은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줄이고 미국 등에 대한 수출을 금지했다. 배럴당 3달러에 불과했던 석유 가격이 1974년 1월에는 배럴당 11.65달러로 4배나 치솟았다.
2차 오일쇼크는 1980년에 발생했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석유 수출 중단과 자원민족주의를 표방한 OPEC의 유가 인상 조치가 화근이었다. 1978년 배럴당 평균 10달러였던 유가는 1981년 초 40달러까지 상승했다.
세계 각국은 부족한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유전 탐사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석유 채굴에 나선 것은 민간인들이다. 일제강점기인 1939년 충북 진천에서 석유광구를 출원해 지하 20m까지 뚫었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1970년 초 중동 산유국들이 석유 무기화를 내세우면서 경제가 큰 충격에 빠지자 정부는 ‘에너지 자주권’ 확보를 위해 본격적으로 석유 개발에 나섰다. 1976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을 통해 “영일만 일대에서 석유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얼마 뒤 시추장비의 윤활유를 원유로 착각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없었던 일이 됐다. 이후 더러 가스를 발견하기도 했지만 경제성이 없어 포기하는 과정이 되풀이됐다.
미국은 1820년 처음으로 석유를 생산하는 등 오랫동안 세계 최대 산유국의 지위를 유지했다. 1930년대 이후의 석유 패권은 소비에트 연방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다퉜다.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절대 강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의 해법은 사막에 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세계 주요 석유 수출국이 중동에 있다고 해서 석유가 사막에만 집중돼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석유 매장량 순위 10위권 중 절반은 중동이 아닌 다른 국가에 있다. 캐나다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석유 부존량 세계 2위다. 석유는 보통 사막 아래 깊은 땅속이나 바닷속에서 솟아난다. 많은 석유기업과 전문가들은 막대한 양의 미발견 석유가 바다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북극은 석유의 신천지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톰 알브란트는 “미발견 석유의 절반 이상은 깊은 해저에 있고, 그중 절반은 북극해에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극의 7개 지역밖에 조사하지 못했으며, 아직도 28개 지역을 더 조사해야 한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USGS에 따르면 북극에는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13% 수준인 900억 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 매장량이 최대 1600억 배럴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