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반전】
한국은 대만과 사이가 나빴다?
최근 우리나라는 성주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G2(미국과 중국) 답지 못한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적 보복으로 양국간에 긴장이 계속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아닌 중국 ‘대만’에 대한 관심도 다소 높아지고 있다. 대만(臺灣)의 정식 국호는 중화민국(中華民國, Republic of China). 통상 타이완(Taiwan)으로 부른다. 대만 정부는 자신들이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의 중화민국을 의미한다. 1912년 중화민국이 수립된 해를 기점으로 하는 중화민국력을 사용하고 있다. 2017년은 민국 106년이 되는 셈이다.
중화민국은 1912년 청 왕조가 전복되고, 쑨원(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바탕으로 중국 대륙에 세워진 민주공화정 국가다. 1928년부터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 줄여 국민당)은 국민정부라는 이름으로 중화민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이후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배해 대륙에서 정치 기반을 상실하고, 대만으로 쫓겨났다.
대만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을 대표해 유엔(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활동했다. 미국의 절대적인 후원 덕택이다. 미국이 공산주의 중공 정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은 유엔 상임이사국이 될 수 없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이 수립되고, 같은 해 12월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패퇴한 후에도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는 대만의 중화민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1964년 10월 원폭실험에 성공하면서 중국의 국제 지위가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의 대중국 정책도 차츰 변화를 보였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미 국무장관은 1971년 7월 베이징을 방문해 저우언라이(周恩來)와 회담한 후 다음 해 초 닉슨(Richard M. Nixon)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전격 선언했다. 닉슨은 1972년 2월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상해공보(上海公報, 상하이 공동성명 발표)’에 서명하며 미중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이 역사적인 문건에서 중국 측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대만은 중국의 일개 성에 불과하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미·중 관계의 급격한 변화는 유엔에서의 중국 대표권 문제를 촉발시켰다. 양국 간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1971년 유엔총회 결의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정통 정부로 승인됐다. 유엔총회는 1971년 10월 중국 권리회복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76표, 반대 35표, 기권 1표로 통과시키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2578호 결의문을 작성했다. 결의문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모든 권리를 회복시켜 그 정부대표가 국제연합에 주재하는 중국의 유일하고 합법적인 대표임을 승인한다. 동시에 즉각 장제스 대표를 국제연합 및 모든 부속 조직에서 축출한다”고 명시해 중국의 합법성을 공식 인정했다.
이후 대만은 중국의 견제와 방해로 국제적으로 고립됐다. 1971년 66개에 이르던 수교국은 1972년 말에는 39개로 줄었다. 이어 1979년 1월 미국은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대만에 주둔 중인 미군을 철수시켰다. 아울러 1954년 대만과 맺었던 상호방위조약도 폐기했다. 다만 외교적인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을 느낀 미국은 1979년 4월 ‘대만관계법(United States-Taiwan Relation Act)’을 제정해 대만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적절한 대응을 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중화민국재대만(中華民國在臺灣,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대만은 1992년 11월 옵서버 자격으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가입하고 동시에 중화대북(中華臺北, Chinese Taipei) 명의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 가입했다. 2002년 1월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는 한편,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을 고수해 대만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만은 국제경기에서 국호와 국기를 사용할 수 없다. 대신 ‘Chinese Taipei(中華臺北)’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대만은 우리나라가 중국을 중공이라 부르며 공산주의 세력과 대치할 때 우리의 최고 우방국이었다. 당시 대만은 ‘자유중국’으로 불렸다. 항일전쟁과 반공전선에 있어서는 형제국이자 혈맹국이었다. 한국전쟁 후에는 유엔한국임시위원회 7개국 중의 하나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한 나라가 바로 대만이다. 대만 주재 1호 외국 공관이 한국대사관이었을 정도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중국 하면 당연히 대만을 가리켰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양국 관계의 분수령이 됐다. 1992년 한국이 중국과 국교를 맺으면서 자연스레 대만과의 국교는 단절됐다. 이후 서울에 다시 대표부가 설치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2016년 1월에는 한국 걸 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周子瑜·16)가 한국 방송에서 대만 국기(國旗)를 흔들었다가 중국 측에 사과한 사건이 파문을 일으킨 바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