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반전】
동해는 쓰나미가 안 생긴다?
쓰나미(津波, Tsunami)는 지진해일을 뜻하는 일본어다. ‘항구(津, 진)’를 뜻하는 쓰(tsu)와 ‘파도(波, 파)’의 나미(nami)가 합쳐진 말이다. ‘포구로 밀려드는 파도’라는 뜻이다. 일본이 지진으로 인한 해일의 피해를 가장 많이 겪어 일본 말이 세계 공통어가 됐다. 1946년 태평양 주변에서 일어난 알류샨열도 지진해일이 당시로서는 자연재해 사상 최대 규모의 희생자를 냈다. 이후 세계 주요 언론들은 ‘지진과 해일’을 일컫는 일본어 ‘쓰나미’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3년에 열린 국제과학회의에서 쓰나미는 국제어로 공식 채택된다.
해일이란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현상이다. 지진, 폭풍, 화산 폭발, 빙하의 붕괴 등에 의해 일어난다. 지진 강도는 일반적으로 리히터 규모로 파악한다. 지진 규모가 1 커질 때마다 에너지는 30배 증가한다. 강도 6 지진은 강도 5 지진보다 30배 강력하고, 강도 4 지진보다는 900배(30×30)나 강하다. 규모 1 강도는 60톤 폭약(TNT)의 힘에 해당한다. 규모 6 정도가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투하된 원자폭탄과 같은 에너지다.
쓰나미는 바다 밑의 지진이나 화산 폭발 등에 의해 해수면의 높이가 크게 변할 때 발생한다. 땅덩어리가 밀고 올라와 거대한 물길을 위로 올린다. 이 때문에 달라진 해수면의 높이는 다시 같아지려고 상하 방향으로 출렁거린다. 이런 해수의 파동은 옆으로 계속 전달되면서 대형 쓰나미를 일으킨다. 쓰나미는 짧은 시간에 여러 차례에 걸쳐 몰려온다. 쓰나미는 폭풍해일보다 훨씬 강력하다. 폭풍해일은 바다 표면에서만 파도가 일렁이지만 쓰나미는 바다 밑바닥에서부터 표면까지 바닷물 전체를 출렁이게 한다.
쓰나미의 속도와 규모는 수심과 관계가 있다. 수심이 깊을수록 쓰나미의 속도는 빠르고 규모도 커진다. 수심이 태평양의 평균인 약 4km일 때 쓰나미의 전파 속도는 시속 700km다. 제트기와 거의 맞먹는 속도다. 해안가로 갈수록 속도는 느려지지만 파고는 높아져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수마(水魔)’로 돌변한다.
최근 10년간 발생한 쓰나미 중 대참사로는 2004년 인도네시아와 2011년 일본 쓰나미가 있다. 2004년 12월 26일 오전 9시 59분(한국 시각)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규모 9.1의 강진은 인도양의 거대한 쓰나미를 촉발시켜 총 10여 개국에서 23만여 명이 희생됐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경 규모 9.0의 강진에 이은 초대형 쓰나미가 발생해 일본 동북부 해안을 덮쳤다. 이로 인한 희생자가 1만 8000여 명(2012. 8. 8)에 달했다. 희생자 중 90%가 물에 빠져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수심이 2km나 되는 우리나라의 동해 지역은 지진이 잦은 일본에 인접해 있어 쓰나미 발생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1940년, 1964년, 1983년, 1993년 일본 근해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동해안의 여러 지역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특히 1983년에는 사망 1명, 실종 2명 등의 인명 피해가 나고 많은 민가와 배가 유실됐다. 지난해에는 경주에 진도 5.8의 강진이 있었고 작년 11월 15일에는 포항에 진도 5.4의 강진으로 많은 인적·물적 손실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포항을 비롯한 전국민들이 지진의 공포에 휩싸였다. 지진 전문가들은 포항과 경주, 울산 등에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양산단층이 자리 잡고 있어 언제든 5.0 이상의 강진이 올 수 있고 이로 인해 쓰나미가 언제든 발생할 수가 있다고 경고한다. 게다가 동해안에는 많은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있어 동일본 대지진 때 폭발한 후쿠시마 원전을 떠올리는 국민들도 많다.
조선시대에도 “울산에서 큰 파도가 12보까지 육지로 들락거렸다”(1643), “철산 바닷물이 크게 넘치고 지진이 일어나 지붕의 기와가 모두 기울어졌다”(1668), “강원도에서 해일로 표몰한 인가가 많았다”(1702), “하루에 7~8차례나 동해 바닷물이 넘어들어 인가가 많이 침수됐다”(1741)는 기록이 있다.
조선 후기의 대학자 허목(許穆, 1595~1682)은 일찍이 쓰나미를 예견한 선각자였다. 그는 삼척부사로 있던 1661년 쓰나미의 재앙을 막기 위해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8호)’를 세웠다. 척주는 삼척의 옛 이름이다. 비문이 조수를 물리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퇴조비(退潮碑)’라고도 부른다. 당시 삼척은 바다의 해일과 풍랑이 민가까지 밀려들어 백성들의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등 재앙에 시달렸다. 비(碑)를 세운 이후 신기하게도 해일이 물러가고 바다가 조용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