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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면체 _ 우보 만보(漫步)

등록일 2025년09월11일 14시00분
계면체 _ 우보 만보(漫步)
하 종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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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_ 하종혁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 기술에 ‘그랭이 공법’이라는 게 있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울 때, 기둥의 아랫부분을 주춧돌 윗면의 굴곡 그대로 다듬어 주춧돌과 기둥이 딱 물리게 하는 방법이다. 주춧돌과 기둥을 반듯하게 손질하면 훨씬 깔끔하게 보일 텐데, 수고를 마다않고 굳이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이렇게 시공하면 위에서 누르는 지붕의 하중을 분산시켜 지진에도 강할뿐더러, 무엇보다 그 연결 부분을 한층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단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빌려 쓴다는 조상들의 마음이 담긴 기법이라는 걸 알고는 무릎을 탁, 쳤다.
 
정조문(1918∼1989). 지금은 사라진 ‘조선’이라는 국적을 끝까지 고집하며, 조국이 온전하게 하나가 될 때까지 바다를 건너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사신 분이다. 예천에서 출생한 조총련 사업가인 그는 자기가 살던 집을 허물어 ‘고려미술관’을 지었고, 죽기 직전에 삼십여 년 동안 모은 1,700여 점의 문화재를 통일된 정부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25주기를 맞아 당신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정조문의 항아리”라는 독립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그는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았다. 끝내 고향 땅조차 밟지 못하면서도 평생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생을 마감한 선생이야말로 경계 없는 경계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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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랭이 공법. 
 
 
요즘 나의 하루하루는 꼭 살얼음을 걷는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어린애를 닮아가는 어머니와 그런 시어머니의 투정을 여상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내와의 사이에서 하릴없이 서성인다. 아내는 얼마 전에 돌발성 난청이 생겨 여태 애를 먹고 있다. 이미 손상된 청신경은 회복되기 어렵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나도 맥이 빠졌다. 이럴 때일수록 좀스럽게 처신하지 않아야 할 터인데, 어찌 된 게 나이가 들수록 더 까탈스러워져 별것도 아닌 일을 괜히 키우기 일쑤다. 나이 예순을 가리켜 이순이라 한 공자님 말씀이 무색하다.
 
언젠가 ‘계면체’라는 독특한 제목의 조각 작품을 보았다. 안양박물관에 전시된, 일본 작가 ‘토야 시게오’의 작품이었다. 굵은 나무 둥치와 뿌리의 경계면을 이루는 그루터기를 괴이하게 표현하였는데, 흙에 덮이는 나무 경계면의 안쪽을 드러낸 것이었다. 구멍을 크게 뚫어놓아 언뜻 공허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수많은 돌기가 마치 복잡한 근육과 혈관, 신경조직이 지나는 목덜미를 연상하게 했다. ‘계면界面’이라면 ‘서로 맞닿아 있는 두 물질 또는 상相의 경계면’을 말하는 것일진대, 그렇다면 ‘계면체’라는 말은 사전에 수록될 수 없는 말이 아니겠나.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하나의 경계면에 생성과 재생, 죽음을 동시에 표현하려 한 것 같았다.
 
느티나무나 물푸레나무의 뿌리나 옹이에 생긴, 용이 뒤엉킨 것 같은 무늬를 운용문雲龍紋이라 한다. 옛날에는 기묘하게 뒤틀린 나뭇결을 이용해서 불상도 만들었고, 지금도 잘 지은 집의 기둥이나 고급 가구를 만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목재다. 우리가 흔히 보는 나무의 뿌리로 만든 큰 탁자는 느티나무 밑동과 뿌리가 맞닿는 부분을 이용한 것이다. 이 부분을 ‘용목’이라 하는데, 문양이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다른 곳보다 생육이 더뎌 재질이 특히 단단하다고 한다. 뿌리와 줄기의 모든 기운이 이 한곳에 엉긴 덕인가. 살아서는 노거수로서 마을 사람들의 안식처 노릇을 톡톡히 했을 느티나무가 그 그루터기까지 뭇사람들의 위안이 되니 그 심오한 자연의 섭리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멀리서 바라보는 발레리나의 모습은 깃털처럼 가볍다. 하지만 곁에서 보면 그는 온통 땀범벅이고 발가락은 숫제 흉측하게 일그러져 있기 마련이다. 타인의 삶이 마냥 우아하게 보이는 것도, 나의 삶이 유독 지질하게만 여겨지는 것도 다 그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때때로 잊는다. 미수米壽가 목전인 어머니의 말라버린 근력도 당신의 힘들었던 중년에 비하면 그만하기가 다행이요, 아내가 느닷없이 부리는 짜증도 남보다 조금 늦게 나타난 갱년기쯤으로 여기면 견딜만하지. 아이들에게도 안달할 게 뭐람. 느긋하게 지켜보노라면 제각기 제 길을 찾아갈 텐데. 방안에서 꼼짝하지 않는 아내를 일으켜 바깥바람이나 쐬러 갈까 보다. 늦여름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하늘엔 이미 가을빛이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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