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철의 세상만평 _ 엿 먹이나
“세상은 엿 같고 우리는 계속 엿을 먹는다.” 요즘 한창 뜨는 OTT 시리즈물인 ‘애마’에서 나오는 주옥같은 대사 중 한 대목이다.
세상 살기가 갈수록 힘들어진다. 다방에 가면 예쁜 레지 아가씨가 와서 무슨 커피를 마실 것인지 상냥하게 주문도 받고 크게 할 짓 없으면 옆에 앉아 커피도 타 준다. “프림 둘, 설탕 둘...이쪽 뚱뚱한 아저씨는 셋,셋...맞죠?” 이 정도의 애교에 우린 야쿠르트 하나 빨라고 선뜻 인심 쓰곤 했다.
느닷없이 운전하던 친구가 시원한 커피가 먹고 싶다면서 인근 커피점을 검색해 보란다. 겨우 한곳을 찾아 알려주었더니 나에게 묻는다.
“그 커피점이 디티점 이가?” 뭔 소리 하는지 몰라 되물었다. “디티가 뭐꼬?” “드라이브 스루 말이다.” “젠장 커피 한 잔 마시는 데 뭐가 이렇게 까다롭노? 그런 거 몰라.” 커피점 뒤에 DT라고 붙어 있으면 차를 몰고 가서 커피를 사는 드라이브 스루 커피점이란다.
드라이브 스루가 왜 생겼는지 난 모른다. 젊은 친구들은 커피 쭉쭉 빨면서 운전하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음악 들어가면서 진한 커피 향을 음미하는 여유는 없는 모양이다.
스피커를 통해 무슨 커피 주문할 것인지 묻는 말에 아는 척하던 친구도 버벅댄다. 커피 종류가 한 두개라야 말이지.
난 무식해서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내 연배는 다 키오스크 앞에서 쫄고 있다. 더듬거리며 주문을 하는데 진땀이 다 난다. 뒤에 줄 선 젊은 친구들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뭘 주문해야 하는지 몰라 헤매는 나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해진다.
사실 난 햄버그란 단어만 알지 ‘와퍼’가 뭔지 ‘맥시멈’이 뭔지 모른다. ‘더오치 맥시멈 원파운드’라는 햄버거를 먹어 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실물을 본 적도 없다. 그러니 주문이 더딜 수밖에. 그냥 햄버거 이름 하나면 모든 것이 통하던 시절은 지나가고 만 것이다.
“이게 이름이 뭐라고?” “키오스크”
이 ‘키오스크’란 이름 외우는 데 몇 달이 걸렸다. 지금도 사실은 입에 붙지 않아 물으면 빨리 기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왜 이름을 이딴 식으로 지었을까? 아파트 이름 영어로 길게 지어 놓으면 시부모가 헷갈려 못 간다더니만 나이 먹은 인간들은 패스트 푸드점에 오지 말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머리 잘 돌아가는 시부모는 시누이 앞장세워서 찾아간다고 하지만 다 헛말이다. 젊은 녀석들이 그런 앞잡이 짓을 일부러 시간 내어 여간해서 해주지 않는다.
“나쁜 놈들, 그냥 주문기라고 부르면 안 되나?”
어째 삶이 갈수록 힘이 든다. 정말 세상은 엿 같고 난 계속해서 엿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