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동맹이란 이름의 청구서 - 이재명 대통령 방미 성과
이재명 대통령의 첫 방미는 "미래형 전략동맹의 서막"이라는 화려한 수사로 포장되었다. 반도체, 조선, 소형모듈원전(SMR)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협력의 물꼬를 텄다는 긍정적 평가가 뒤따랐다. 그러나 환호 뒤에 감춰진 청구서의 내용을 냉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번 방미가 과연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 국가로 도약하는 발판이 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전략적 실패를 되풀이하는 서곡이 될 것인가.
'선물'인가 '청구서'인가: 487조 투자의 이면 이번 방미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것은 단연 3,500억 달러(약 487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이다. 이 투자는 미국 내 공장 설립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며, 미국의 제조업 부흥과 공급망 재편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막대한 자본은 한국 기업의 미래 자산이며, 그 과실은 당장 미국의 몫으로 돌아간다. 한국은 '기회의 문'을 열었을 뿐, 그 문턱을 넘어 실질적 이익을 확보하기까지는 험난한 과정이 남아있다.
이는 과거 중국 투자 실패의 데자뷔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한국 기업들은 거대한 시장을 보고 앞다투어 중국에 투자했지만, 결과는 기술 유출과 자산 흡수, 그리고 결국 경쟁자로 성장한 중국 기업에 밀려나는 수순이었다. 정치적 압박과 동맹이라는 명분 아래 기업의 자율적 판단이 제한된 대규모 투자는, 자칫하면 ‘제2의 중국 투자 실패’로 귀결될 수 있다는 경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흔들리는 FTA의 초석: 15% 관세의 의미 더욱 뼈아픈 대목은 한미 FTA의 근간을 흔드는 관세 문제다. 정부는 당초 거론되던 25%의 고율 관세를 15% 단일 관세율로 막아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사실상 FTA의 무관세 혜택을 스스로 포기한 ‘사실상의 FTA 무력화 선언’에 가깝다. 트럼프 시대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모든 상황을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는 것은 결국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일 뿐이다.
이로써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가전, 화장품 등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FTA라는 경제 동맹의 가장 큰 실익을 잃은 대가로 얻은 것이 불확실한 미래 협력이라면, 이는 결코 성공적인 협상이라 평가하기 어렵다.
'떠나는 기업'과 '비어가는 일자리': 산업 공동화의 그림자 투자는 미국으로, 공장은 미국으로, 일자리도 미국으로 향한다. 그사이 한국 내 산업 기반은 어떻게 될 것인가. 대규모 해외 투자는 필연적으로 국내 산업의 공동화 우려를 낳는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노란봉투법' 등 경직된 노동 정책은 기업의 해외 탈출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강화하면서, 해외에서는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도록 등을 떠미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방미의 외교적 성과가 국내 산업 기반의 붕괴를 대가로 한 것이라면, 이는 국익의 관점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외교적 수사 너머의 냉정한 손익계산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에서 미국은 약 70조 원 규모의 대한항공 항공기 엔진 구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가능성 시사 등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실익을 확실하게 챙겼다. 반면 한국은 장기적이고 불확실한 '기회'와 '협력 강화'라는 외교적 수사를 들고 돌아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성과를 홍보하는 낙관론이 아니라, 냉철한 손익계산이다. 대미 투자가 진정으로 한국 경제의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되려면, 그에 앞서 국내 산업의 체질을 강화하고 기업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그렇지 않다면 '미래형 전략동맹'이라는 화려한 포장지는, 결국 기술과 자본만 내주고 돌아섰던 과거의 실패를 가리는 허울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