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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하종혁] 문풍지 _ 우보 만보(漫步)

등록일 2025년07월14일 13시56분
문풍지 _ 우보 만보(漫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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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_ 하종혁 
 
 
예전에는 문풍지를 대는 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요즘에야 그런 일도 드물고, 어쩌다 필요하면 ‘틈막이’ 같은 걸로 가뜬하게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는 김장하거나 장 담그는 일 못지않게 요긴하였기에, 때로는 식구가 온종일 매달려야 하는 성가신 작업이었다. 긴긴 겨울을 따습게 나려면 찢긴 창호지를 새로 바르고, 문 틈새에는 응당 문풍지를 넓게 대야 했다. 

개항기에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문풍지를 처음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단다. 문틀을 저리도 어설프게 만들어 해마다 공연한 수고를 하는구나 싶었겠지. 왜 안 그럴까. 우리보다 한참이나 앞서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고, 매사를 빈틈없이 처리하는 그네들의 눈에 오죽 시답잖게 보였을라. 당연하다. 나도 한때는 문틀 하나 깔끔하게 마무리할 능력도 없는 못난 조상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으니까.

바야흐로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한때 산업화라는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엔 물건을 정밀하게 만드는 능력이 으뜸가는 미덕이었다. 그렇지만 ‘정보통신혁명’의 시대를 거쳐 이른바 ‘AI시대’라고 불리는 지금은, 지식만 잔뜩 움켜쥔 사람보다 인문학적 감각이 예민한 이를 더 소중히 여기고, 틀에 박힌 인성보다 개성과 다양성이 넉넉한 사람을 한층 우대하게 되었다. 이제는 도리어 ‘틈’ 있는 사람을 눈여겨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얼마 전에 곡성의 태안사에 들렀다. 우리나라 선종 불교 9산선문 최초의 사찰이며, 동리산파의 본사이다.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어 능파각과 일주문을 뺀 다른 건물은 죄다 근래에 새로 지었다. 그래도 축대는 고증을 바로 하여 쌓았다고 들었는데, 내 눈에는 도무지 마뜩잖았다. 크고 작은 돌을 생긴 그대로 자연스럽게 쌓은 것은 좋은데 돌 사이의 틈이 너무 벌어진 듯했다. 그래서 스님께 어쭙잖게 여쭈었다. 스님은 석축의 틈새가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조화를 느껴보라시며 빙그레 웃었다. 석축의 안쪽에다 잡석을 충분히 넣어, 그것이 위아래 돌을 자연스럽게 물고 있어서 석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아주는 한편, 배수로의 역할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틈은 중요하다. 돌탑을 조성할 때도 적당히 틈을 줘야 한다. 틈이 없으면 돌이 서로 맞물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돌을 너무 빽빽하게 또는 오밀조밀하게만 쌓으면 돌이 서로 힘을 받지 못해 오히려 탑이 내려앉기 십상이다. 제주도의 돌담을 보면 수긍할 것이다. 구멍이 숭숭한, 얼핏 엉성하게 보이는 돌담에 만약 틈새가 없다면 제주도의 그 거센 바람을 어찌 견딜 수 있겠나. 그러고 보니 철길의 이음새 부분에도 틈이 있다. 틈이 충분하지 않으면 철로는 한여름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휘어버릴 것이다. 어쩌면 채우는 일보다 적당하게 틈을 주는 게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설거지할 때, 그릇이 꽉 낄 경우가 있다. 미끄러운 거품에 넣어도 소용없다. 이럴 때, 그릇을 엎어놓고 밑바닥을 가볍게 몇 번만 두드리면 안쪽 그릇이 거짓말처럼 빠진다. 바깥 그릇의 진동이 안쪽에 전달되면서 미세한 틈이 생기고, 이 틈을 통해 작은 떨림이 안쪽 그릇을 움직이게 한단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지 않던가? 상대를 움직이는 근원은 완력이나 지위나 돈이 아니라 마음을 흔드는 작은 떨림이 아니던가. 그 떨림은 작은 ‘틈’에서 비롯된다. 그 틈에서 비움의 지혜와 소통의 미덕을 본다.

지난겨울, 어머니는 창에서 찬바람이 난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방을 넓히려 바깥으로 내친 베란다 쪽이었다. 지난 몇 해 동안 별 탈 없이 지내셨는데 웬 성화일까 의아했다. 난방 온도를 올려도 보고, ‘뽁뽁이’를 사서 창에 덧대기도 하면서 요란을 떨어도 어머니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옆구리를 슬쩍 찔렀다. 

“연세 탓이에요.”

아하, 그렇구나. 당신 말씀은 어쩌면 쇠잔한 몸이 늘어놓는 넋두리인지 모르지. 아니면 가슴에 눅진하게 밴 외로움에서 묻어나는 나직한 하소연일지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 문의 틈새라면 문풍지 같은 걸로 억지로 막아라도 보련만, 가슴에 깊이 파인 생채기라면 그 무엇으로 메울 수 있나. 그깟 비닐 조각으로 설레발을 쳤으니, 이런 딱한 위인이라니…. 

가슴 언저리에서 찬바람이 휑하니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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