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후원하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네이버톡톡
맨위로

[수필_하종혁] 세상을 흘겨보다

등록일 2025년07월04일 16시25분
세상을 흘겨보다
 
 
umg_20250704162451_N_7_600x600_100_5_2
수필가_하종혁 
 
 
사람은 자기가 뚫은 문구멍을 통해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높은 안목으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널찍한 창을 통해 대상을 근본까지 꿰뚫어 볼 것이고, 하루를 그럭저럭 넘기는 이라면 기껏해야 손바닥만 한 창을 통하여 겨우 사물의 겉모양이나 어림잡으며 아웅다웅하겠지. 내 처지인들 뭐 다를 게 있겠는가. 광대무변한 세계를 바늘귀 같은 틈새로 들여다보며 세상의 이치가 어쩌고저쩌고하며 건들거리니 공연히 남들의 비웃음을 사기 딱 십상이다.

자신의 좁은 소견엔 아랑곳하지 않고 남의 이목에만 신경을 곤두세워 사는 사람들이 흔하다. 연암 박지원의 『낭환집서蜋丸集序』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거나하게 취한 임제(林悌, 1549∼1587)가 말에 오르려 하니, 하인이 말렸다. 

  “나으리, 가죽신과 나막신을 한 짝씩 신으셨습니다.”

백호白湖가 되려 하인을 꾸짖었다.

  “이놈아, 길 오른편에 있는 자는 ‘가죽신을 신었군요’라고 할 것이고, 왼편에서 보는 이는 ‘나막신을 신었군요’라고 할 터인데 무슨 문제란 말이냐?”

우스개로 들어넘길 이야기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실제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만 주시하며 살만큼 한가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럴만한 자리에 있지도 않으면서 괜히 세상의 오만가지 걱정을 늘어놓는 게 흔히 보는 인간사다. 

하면, 비뚤어진 세상에서라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중국 전국시대 사람 굴원屈原은 ‘세상이 어지러우면 발이나 씻고 때를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지만 일본의 마수에 걸려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었던 시기에 우리는 손 놓고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우뚝한 봉우리였던 신규식(申圭植, 1879∼1922)은 한창 젊은 나이에 ‘애꾸’가 되었다. 당신이 26세 되던 해에 을사늑약의 치욕을 견디지 못해 음독하여 오른쪽 눈이 멀게 된 것이다. 몸을 추스른 그는 심기일전하여 호를 아예 ‘예관(睨觀)’이라 하였는데, ‘흘겨본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이제 한쪽 눈을 잃어 일본이 설치는 뒤틀린 세상을 보지 못해 도리어 다행이오, 앞으로 한쪽 성한 눈으로 독립한 나라의 모습을 똑똑히 보겠노라’고 덤덤히 말했다 한다. 

훗날 선생은 임시정부의 분열을 수습하려고 단식을 결행한 끝에 마침내 순국하였다. 그는 한평생 좌고우면하지 않고 애오라지 한 골로만 세상을 응시하였다. 뒤틀린 현실을 잠시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섰기에 뒤집힌 세상을 흘겨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황현(黃玹, 1855∼1910)은 태어날 때부터 ‘사팔뜨기’였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났으며, 구한말의 3대 시인으로 꼽힌다. 그는 이웃 고을의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이 의병을 일으켜 격문을 써 줄 것을 부탁하자 한때 망설인 적이 있었다. 매천梅泉은 이를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러다 끝내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다’는 절명시를 남기고 스스로 처사의 삶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 벼슬에 나간 적이 없었으므로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면서도 선비로서의 소명과 평생 글을 읽고 깨친 길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죽는다고 하였다. 선생은 비록 두 눈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장애를 가졌을망정 비틀린 세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그래서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 버젓이 행세하는 세태를 똑바로 보지 않았기에 이것을 되레 다행으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에게도 세상과 통하는 개구開口가 있었다. 하지만 철없던 시절, 바늘구멍만 한 틈새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우울한 잿빛이었다. 그러니 애꿎은 세상에다 공연히 눈 흘기며 산 시간이 턱없이 길었다. 좁다란 창이었을지언정 애써 말갛게 닦아야 할 시기에 먼저 깨달은 사람을 샘내면서 내가 옳다고 우기고, 일의 결말이 뻔한데도 괜스레 고집을 부렸다. 조금 아는 걸 내세우며 남이 몰라줄세라 조바심하며 지냈다. 

시간이 덧없이 흘렀다. 그 세월과 더불어 나의 객쩍은 울화가 조금씩 사그라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겠다. 도연명의 「귀거래사」 한 구절을 나직이 읊조린다.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네’

창에 드리워진 묵직한 커튼을 걷는다. 한 옴큼의 상큼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결제하실 금액은 원 입니다.
무통장 입금시 입력하세요
vote_up 올려 0 vote_down 내려 0
관련뉴스 - 관련뉴스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본 뉴스

경제 사회 정치 세계 만평

칼럼 더보기

기부뉴스 더보기

해당 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