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개 역할
도지개라는 물건이 있다.
형태를 사용하는 곳에 맞게 바로잡는 틀을 일컫는다. 이런바 ‘물건’을 제대로 만드는 틀이다. 제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도 그 기량을 알아보고 도지개 역할을 해주는 누군가가 없다면 그냥 밋밋한 결과물만 낳을 뿐이다. 그래서 도지개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롯데 자이언츠의 최초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선수가 무쇠팔 혹은 철완으로 불린 최동원이다. 최동원이 있기까지는 그의 아버지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일본프로야구 중계방송을 보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 호리우치 츠네오의 투구폼을 아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낙차 큰 커브인 ‘드롭볼’이다. 드롭볼은 호리우치의 주무기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이다. 도지개 역할을 한 것이다.
“어이! 덩치 큰 친구, 공 좋은데.”
“감사합니다. 많이 가르쳐 주세요.”
“별거 없어. 신인답게 겁 없이 던지면 돼.”
2006년, 최동원 선수가 한화 이글스 투수 코치 시절 신인 투수와의 유명한 대화이다. 그러고는 바로 김인식 감독을 찾아가 물건 하나 발견했다면서 적극 추천하게 된다. 그 친구가 바로 류현진이다. 그 후 류현진은 최동원의 적극 지원 아래 엄청난 투수로 거듭난다. 선동열도 존경했던 최동원은 류현진의 도지개 역할을 한 것이다.
KBO 통산 타율 2할9푼7리, 6060타수 1797안타 194홈런 730타점 1100득점 510도루를 기록한 레전드 야구 선수가 있다. 삼성에 있다가 KT 코치로 간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다.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지금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의 이정후가 아들이다. 흔히 ‘바람의 손자’라고 한다. 이 젊은 친구가 미국에서 받는 돈이 총 6년 동안 1억 13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484억 원이다. 잘난 아들 둔 이종범이 부럽다.
그런데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에게 거의 배운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종범은 그때그때 배울 것이 있다면서 지금 네가 배울 것은 지금 너의 코치 선생님이지 내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또한 이종범은 멋진 도지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초구를 무지 좋아했던 아버지와 초구 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는 이정후의 차이점을 보면 기술을 미리 전수한답시고 잘못된 교육을 했다면 엉뚱한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부인하지 못한다. 초구 치지 말라는 선동열 감독의 지시를 무시하고 초구 친 양준혁 선수가 아웃당하고 더그아웃에서 서로 고성을 지르며 싸운 이야기처럼 도지개는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 본다.
요즘 이상한 일에 휘말려 체면 구기고는 있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축구 선수 손흥민 뒤에는 자기 아들은 아직 월드클래스가 아니라는 아버지 손웅정이 있다. 강원도 춘천에 ‘손흥민체육공원’이란 큰 센터를 지어 놓고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아버지의 철칙인 인성이고 자기가 나중에 활용할 수 있는 무기를 게으름 없이 꾸준히 준비하는 연습만이 최고의 선수가 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손웅정 역시 제대로 도지개 역할을 한 것이다.
제대로 된 도지개가 많아야 쓸만한 인재가 많이 나올 텐데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도지개 역할을 하고는 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도지개 역활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