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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_광한루에 퍼지는 꽃향기

등록일 2025년05월21일 17시54분
수필_광한루에 퍼지는 꽃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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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백후자
 
 金樽美酒千人血 (금준미주천인혈) 금동이의 좋은 술은 만백성의 피요
玉盤佳肴萬姓膏 (옥반가효만성고) 옥소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 (촉루락시민루락) 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 (가성고처원성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 소리 높더라

변사또의 생일 잔치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 어사 이몽룡이 잔치 자리 맨 끄트머리에 앉아 허접한 상을 받고 읊은 시다. 이몽룡의 시 한 수에 비렁뱅이 취급하며 조롱하고 얕보던 양반네들 안절부절못한다. 춘향전에서 이 장면은 오감을 열어 통쾌함의 극치를 맞보게 한다. 뒤이어 사방에서 들려오는 “암행어사 출두야!” 그것은 희열이다.

이몽룡이 누구인가. <춘향전>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다. 그럼 <춘향전>은 뭔가. 한국 서민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소설이 아닌가.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다고 배웠는데 아니라는 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학설도 바뀌고 전해지는 이야기도 여러 가지다. 워낙 여러 장르로 알려진 터라 ‘춘향전’ 하면 모르는 이가 많지 않다. 

소설 속 인물로만 알았던 그가 실존했던 인물이란다. 이쯤 되면 누군가에 의한 기록이 있다는 말이 되고 그에 따른 또 다른 학설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 이몽룡, 그를 만나러 간 곳은 그가 태어나 살았다는 경북 봉화이다.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로 들어서니 여느 시골 마을과 다르지 않게 논밭이 먼저 들어온다. 몇 가구 보이지 않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이몽룡 생가 계서당으로 가는 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마을 길로 들어가 정자 모습으로 지어진 계서당 쉼터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계서당 주차장이 있다. 그곳에 주차하고 반대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 서너 가구를 건너 사과나무밭을 낀 대문 앞으로 다가간다. 높지 않은 솟을대문 앞에 봉화 계서당 종택에 대한 설명을 붙인 표지석이 있다. 솟을대문 기둥에는 ‘사단법인 이몽룡 (성이성) 기념사업회’라는 팻말도 붙어있다.

계서당은 조선 중기의 문신 계서 성이성 선생이 살던 곳이다. 성이성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았는데 현재는 13대손이 산다. 계서당에 거주하는 종손을 뵐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뛴다.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지만 고요함만 맞이한다. 그래도 들어와 살펴보고 가라고 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먼 길 달려와서 대문 안으로 발도 못 들이고 갔으면 어쩔 뻔했나. 

성이성, 그가 진짜 어사 이몽룡이 맞을까. 성이성이 직접 쓴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계서일고>에는 암행어사 임명을 받은 날로부터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는 암행어사 세 번 중 두 차례는 전라도로 간 것으로 기록이 남아 있다. ‘호남암행록’에는 그가 <춘향전>의 실제 인물임을 암시하는 글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소설의 주인공 이몽룡이 실존 인물 성이성을 모델로 했다는 건 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설성경 연세대 국문과 명예교수의 학설이 대표적이다.

성이성의 아버지 성안의(成安義, 1561∼1629)는 실제 5년 동안 남원 부사를 지냈다. 성이성은 아버지를 따라 13세부터 18세까지 남원에 있었다. 그는 남원에 머무는 동안 기녀를 사귀었다. 그 후 남원을 떠났다가 수십 년이 흐른 뒤 암행어사가 되어 그곳을 찾은 것이다. 성이성은 다시 옛 연인을 만나려 했지만, 그 기녀는 죽고 없었다는 게 설 교수의 주장이다.
<춘향전>의 최고 장면은 ‘암행어사 출두’다. 성이성의 4대손 성섭(成涉, 1718∼1788)은 <교와문고(橋窩文藁)>에서 그의 고조 성이성이 남원 땅에서 행한 암행어사 출두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한다.

“우리 고조가 암행어사로 호남에 갔을 때 한 곳에 이르니 호남 12읍의 수령이 크게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 한낮에 암행어사가 걸인 행색으로 음식을 청하니, 관리들이 말하기를 ‘객이 능히 시를 지을 줄 안다면 이 자리에 종일 있으면서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어도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속히 돌아감만 못하리라” 했다. 곧 한 장의 종이를 청해 시를 써주었다.

’樽中美酒千人血(준중미주천인혈) 동이의 술은 천 사람의 피요
盤上佳肴萬姓膏(반상가효만성고) 상 위의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촉루락시민루락) 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가성고처원성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 소리 높더라.’

여러 관리가 돌려가며 보고는 의아해할 즈음 서리들이 암행어사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여러 관리는 일시에 흩어졌다. 당일 파출시킨 자가 여섯이나 됐다.”

소설<춘향전>과 다르지 않다. 이로 말미암아 보면 그 유명한 <춘향전>의 바탕이 성이성의 호남 암행어사 시절 이야기가 맞다. 전해오는 유물 중 성이성이 과거급제 때 받은 어사화 판에 적힌 廣寒香萼(광한향악), 즉 광한루에 퍼지는 꽃향기라는 글자는 그가 이몽룡이었음을 더 확실시하고 있다.
성이성의 흔적을 쫓아가 보니 과연 향기롭다. 향기 나는 여인을 가슴에 담았고, 평생을 청렴과 애민을 실천하며 살았다. 남원 광한루에서 본 이몽룡과 성춘향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의 사랑에서 꽃향기가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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