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밭골 상류의 비슬산 대견봉 기슭에 옛‘금천사’절터
비슬산 금천사 절터를 다시 찾아내고 보니 20년 이상 흐른 것 같다. 그게 2013년도에 비슬산 대견봉 기슭에서 수백 년 전에 창건한 절터를 찾아냈으니 말이다.
비슬산 굿밭골 상류 서쪽이자 비슬산 진달래군락지에서 내려보여 관심을 더한다. 250여 년 전에 편찬한 『여지도서』 사찰 조에 기록된 금천사(金泉寺) 절터이다.
굿밭골은 옛날에는 이 계곡을 끼고 소재사를 오르는 산간길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슬산자연휴양림이 조성되면서 가재골 마을을 거쳐 소재사를 오르고, 그나마 찻길이 아닌 계곡 길도 순환도로가 개설되면서 옛길은 아스라이 사라졌다.
애초에 이 절터는 1996년경 비슬산자연휴양림을 만들면서 순환등산로를 개설하기 위해 답사하던 도중에 발견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휴양림 조성에 몰두하느라 머릿속에 기억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휴양림 조성 공사를 끝내고 『삼국유사』의 <포산이성> 조에 두 승려〔二聖〕가 머물던 자리와 비슬산에서 일연스님과 관련된 절터 찾기에 동분서주하면서 여러 고문헌을 대했다. 이런 가운데 『여지도서』의 기록과 《여지도》의 지도를 확인하면서 찾아낸 절터를 금천사(金泉寺)로 확신했다.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2013년 가을 금천사를 다시 찾아 나섰다. 하지만 워낙 많은 세월이 흐른 탓에 그동안 태풍과 집중호우로 계곡이 유실되는 등 엄청난 지형변형으로 지형 지세 분간이 어려웠고 산간길도 없어져 버렸다. 숲이 울창해지고 운무와 안개가 시야를 가려 이리저리 헤맸다. 게다가 인기척에 놀란 산돼지가 새끼를 부르는 소리에 혹시나 당할지도 모를 불행을 예견해 위협을 느꼈고, 때마침 가랑비까지 내려 포기했다가 며칠 후에 다시 확인차 올라가 찾아내게 되었다.
이곳 절터는 급경사를 이룬 산에 자연석을 정교하게 다듬어 쌓은 축대가 3개소나 되고, 축대를 연결해 부지를 만들었다. 각각의 축대 높이는 맨 아래가 3m, 중간은 2.5m, 맨 위는 1.5m였다.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축재 아래로 조릿대가 무성한 인근엔 기와 조각이 즐비했다. 절터 맨 위에는 길이 2.2m, 폭 1.1m, 깊이 0.4m의 사각 석조물이 땅에 엇비슷 처박혀 있었다. 스님들의 욕조이거나 또 다른 용도로 썼을 수조로 추정된다.
그 옆으로 물이 고인 질펀한 땅이어서 멧돼지가 드나든 흔적이 역력했다. 다시 그 옆에는 길이 2.2m, 폭 1.1m의 거대한 맷돌이 기울어진 채 남아 있었다. 지금껏 절터에서 찾은 거대한 맷돌 수어 개 중에 가장 규모가 큰 맷돌이었다.
『여지도서』 현풍현 사찰 조(신증)에는 ‘금천사는 옛 소재사를 이건하기 위하여 세운 사찰이다’라 했고, ‘소재사는 지금은 폐하였다’고 각각 기록했다. 『여지도서』는 앞장의《여지도》에도 마찬가지로 천왕봉·대견봉·조화봉을 각각 따로 그려 넣었고, 천왕봉 아래에는 유가사를, 대견봉 아래는 金泉寺를, 대견봉 우측에 조화봉이 그려졌다. 금천사 절터 위치를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절터와 석조물을 보아 국가유산으로서 가치성이 높아 보인다. 이곳 절터에서 계속 능선따라 올라가면 가파른 암석이 벼랑을 이루는 절벽 위로는 비슬산참꽃축제가 열리는 진달래군락지이다. 하지만 절터에서는 가파른 벼랑이라 오를 수 없다. 반대로 진달래군락지에서 서편 능선으로 내려가다가 암석 사이로 서편에 계곡이 내려보인다. 그 자리에서 멀리 산비탈에 대나무가 자라는 곳이 곧 금천사 절터이다.
[출처] 굿밭골 상류의 비슬산 대견봉 기슭에 옛‘금천사’절터|작성자 더 피플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