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일자리, 복지를 넘어 지역 안전망의 주체로
금화복지재단 이사장 신경용
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안동과 영덕으로 번지며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주택 945채가 불탔고, 26명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됐다. 푸르던 숲과 평화롭던 마을은 불길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이 참사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예방 시스템과 대응 역량을 되돌아보게 하는 경고였다.
이 비극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사람이 예방에 참여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가능성도 크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그 해답을 함께 찾아야 한다.
그 해답의 일부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복지 중심에 머물렀던 노인 일자리를 재난 예방이라는 공공의 가치로 확장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현재 노인 일자리는 거리 청소, 교통안전 관리, 분리수거 등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 집중돼 있다. 물론 지역 환경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어르신들이 가진 경험과 생활 지혜를 고려하면 보다 책임 있는 역할로 확장할 여지가 충분하다.
무엇보다 산불 예방은 지역 어르신들에게 적합한 영역이다.
대부분의 어르신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지형과 계절 변화, 그리고 위험 요소에 익숙하다. 논밭두렁 소각이나 쓰레기 방치 등 작은 위험 요소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생활 감시자’가 될 수 있다.
이번 봄 산불 역시 인위적인 실화에서 비롯되었다. 2024년 기준 산불의 약 59%가 사람의 부주의로 발생했으며, 쓰레기 소각, 논밭두렁 태우기, 담뱃불 방치, 성묘 중 화기 취급 등 일상적인 행위가 주요 원인이었다.
이러한 위험은 마을 환경에 익숙하고 주변을 자주 살피는 이들이 있다면 조기에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유형들이다.
따라서 지역 단위에서의 촘촘한 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각 지자체의 산불 감시 인력은 인원도 부족하고, 활동 반경 역시 제한적이다. 이 공백을 노인 일자리 인력이 메운다면 그만큼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몇몇 지자체에서는 ‘산불 감시원’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노인 일자리 사업을 연계한다면 단순한 복지를 넘어 지역 안전을 위한 사회적 사명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
이를 실현하려면 먼저 고령자에게 체계적인 예방 교육과 활동 매뉴얼을 제공해야 한다. 활동 시기와 시간은 계절적 요인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그에 걸맞은 보상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산림청, 소방서, 지자체 간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도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활동이 단순한 노인 일거리가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공공 역할’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는 것이다.
100세 시대, 어르신들은 더 이상 돌봄의 대상만이 아니다.
그들은 지역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자,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역량과 의지를 지닌 존재다. 산불 감시 활동은 이들에게 단순한 소득을 넘어 존엄과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울러 대피가 어려운 고령자가 스스로 재난 예방에 참여함으로써 피해자가 아닌 예방의 주체로 설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활동은 큰 의미를 가진다.
노인 일자리를 산불 예방과 같은 공공재 보호 활동으로 확장해 나간다면, 복지와 안전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이는 고령화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고령자와 지역 사회 간의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건강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길이다.
노인 일자리의 쓰임을 바꾸는 일은 단순한 행정 조정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가 생명과 안전, 나아가 존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바꾸는 일이다.
그 시작은 작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울림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노인 일자리는 단지 하루를 보내야 할 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망을 촘촘히 짜는 전략이자, 지역 사회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중요한 열쇠다. 특히 농촌과 산간 지역처럼 인구 밀도가 낮고 고령화가 심화된 곳일수록 이들의 역할은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이제 노인의 참여를 배려나 시혜가 아닌, 지역을 지키는 협력자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은 사회적 투자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노인 일자리 정책은 결국 공동체 전체를 위한 길이다.
한 사람의 감시와 예방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 가치는 수치로 따질 수 없다. 복지를 넘어 생명을 지키는 손길로 이제 노인 일자리는 지역 안전망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