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는 생선의 제왕
철없던 시절에는 뒷집 순이와 “호박꽃도 꽃 이가? 멸치도 생선 이가?”며 서로 놀린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란은 꽃 중의 왕이며 부귀영화를 상징한다고 귀히 여기지만, 아무 땅에 심어도 잘 자라고 애호박, 늙은 호박 주렁주렁 열매도 잘 맺는 호박은 경시한다. 실속으로 따지면 잎, 열매, 씨앗까지 모두 약인 호박이 제일이고, 작고 약해서 도망 다니고 다른 물고기의 밥이나 되는 멸치가 생선의 제왕인 것이다.
김치는 '만든다'가 아니라 '담근다'고 하고 식초는 ‘빚는다’고 한다. '만든다'는 즉각적인 결과를 떠올리게 하지만 ‘담근다'는 시간을 품고 있다. “초 맛이 가면 집안이 망할 징조이다” 식초는 종초(種醋)가 살아있어야 만들 수 있고, 기간도 최소 1년 이상 걸리고, “송엽 +배+ 생강+ 도라지로 빚은 송엽초를 꿀에 타서 마시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 약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빚는다‘고 신성시 했다.
식초, 된장, 김치속에 함유된 유산균과 발효된 염분은 인체의 혈액을 정화시키고, 소화작용을 도우며, 장의 기능을 높이고, 신장의 기능을 강화하여 소변에 거품이 많이 나오는 ‘단백뇨‘까지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요즘 “저염식(低鹽食)은 몸에 해로우니 소금물을 마시자”는 책들이 많다. 어허! 저염식이 해로운 것은 맞는데 왜 물김치, 열무김치, 동치미 국물을 두고 소금물인가? 김치국물과 소금물은 횡금과 석탄의 차이이다. 체내 염분 농도는 어머니가 해주시던 입맛대로 간장, 된장, 젓갈로 짭짤하게 먹으면 되지만 가늠하기 힘든 분은 염도계에 소변 한 방울만 올리면 된다. 정상 염분 농도는 1.2~1.8%이다.
갓 담근 김치는 아직 온전한 맛을 내지 못한다. 김치의 맛과 영양을 좌우하는 양념과 멸치젓갈이 공기 속 미생물을 만나 천천히 발효해야 비로소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기다림이 있어야 한다. 서두른다고 깊어지지 않고, 억지로 빠르게 익힌다고 제맛이 나는 것도 아니다. 김치를 '담근다'는 말에는 그런 시간의 무게가 담겨 있다. 양념을 버무려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고, 적당한 온도에서 익기를 기다리는 그 과정은 우리의 삶을 천천히 삭여 가는 일과도 닮았다.
세상에 좋은 모든 것들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금방 익힌 김치는 겉돌고, 주워들은 풍월로 단번에 얻은 지식은 쉽게 잊힌다. 삶도 부딪치고 찧이면서 숙성되어야 비로소 진짜 맛을 낼 수 있다.
싱싱한 생멸치 드셔보셨습니까? 성질이 급해 잡자마자 죽는다는 멸치. 그 귀한 맛을 보기 위해 봄이면 남해는 여행객들로 붐빕니다. 매년 4월 말 일 경엔 부산시 기장군 대변항에서 멸치 축제가 열립니다. 3년 이상 간수 뺀 소금을 가지고 가서 멸치젓갈을 담아 오는 것, 이건 아무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아닙니다. 예술입니다.
갓 잡은 멸치를 손질해 막걸리에 헹궈 비린 맛을 잡고, 갖은 채소와 함께 새콤하게 무쳐낸 멸치 무침회. 부드럽고 쫀득한 생멸치의 진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싱싱한 생선회를 먹었는데 배 아프고 설사 납니다. 빙초산(氷醋酸) 합성 식초로 무친 초장 때문입니다. 빙초산은 석유에서 추출한 화공약품으로 초산 테러를 일으키는 독극물입니다.
멸치의 영양성분이라 하면, 인체의 가장 중요한 무기질 중 하나로 뼈와 치아를 형성하며, 혈액 응고(凝固)를 조절하고, 근육과 신경, 심장의 적절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칼슘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멸치를 통으로 먹었을 때만 맞는 말이다. 멸치를 등뼈 빼고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먹는다면 좋은 성분은 다 내다 버리고 쭉정이만 먹는 꼴이다. 멸치 내장의 쓴맛과 대가리, 등뼈 요것이 바로 약이다.
멸치는 작은 물고기지만 실은 뼈가 강하고 아주 특수한 물고기다. 일반적인 물고기의 항문은 배 밑에 붙어 있지만 멸치의 항문은 꼬리 부근에 붙어 있다. 이것은 장(腸)이 특이하게 길고 운동이 많다는 뜻인데, 대체로 육식동물의 장은 짧고 채식 동물의 장은 길다. 동물을 먹지 않는 멸치 나름의 상당한 진화의 이유일 것인데, 그 진화의 방향이 채식 위주의 한국인의 장과 구조가 맞다.
지금 세계에서 사용되는 화공약품, 농약, 플라스틱 등의 환경오염 물질은 최종적으로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바다는 지구처럼 오염이 만연되고 먹이사슬 체계를 통하여 사람의 입에까지 들어오고 있다. 멸치가 다른 물고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자신보다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멸치는 전형적인 플랑크톤 식성으로 아가미로 작은 플랑크톤을 걸러 먹기 때문이다. 즉, 멸치는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는 오염되지 않은 최고급 물고기인 것이다.
멸치를 삶아서 다시 국물을 내고 버리는 것은 전체를 먹어야 하는 자연식에 어긋나서 건강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낭비도 많다. 칼슘이 흡수가 잘되도록 멸치를 햇볕에 말려서 비타민D를 합성시키고, 통째로 가루 내어 참깨가루+ 콩가루+ 김가루+ 버섯가루+ 천일염 등을 섞어서 양념통에 보관해 두고 먹는 것이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