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대한 기도를 바위에 새기다!
선사시대의 유적, 장기리 ‘알터’마을 암각화
#고령군 #암각화 #장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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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구분한다. 다시 말해 문자 기록은 없고 유적과 유물만 남아 있으면 선사시대, 문자로 기록을 남긴 시대를 역사시대라고 한다.
선사시대의 유물로는 토기, 석기 등을 들 수 있고 유적지로는 익히 잘 알려진 전곡리 유적, 석장리 유적, 검은 모루 유적 등이 있는데 고령의 대가야읍 장기리, 쌍림면 안화리, 운수면 봉평리, 지산동 고분 덮개돌에서도 선사시대의 유적인 암각화를 볼 수 있다.
고령군은 행정구역상 경북일 뿐이지 대구와 인접하여 한 생활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기리, 일명 ‘알터’로 불리는 이곳은 터널을 지나 고령의 초입에서 대가야수목원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달리다가 대가천과 회천이 합수하는 지점의 산자락에 있다. 제방을 쌓아 지금은 하천과는 100여m 거리를 두고 있는데 예전에는 강이 마을로 흘렀고 바위 그림은 울주 반구대 암각화처럼 강 옆에 붙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4대강 유역이듯 먹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기를 잡아야 했고 또한,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했으니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신앙과 생활상을 바위에 그린 그림을 말한다.
장기리 암각화는 1971년 주민 조용찬(曺龍贊) 옹이 발견하여 영남대에 제보하면서 영남대학에서 본격적으로 발굴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로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m, 너비 6m인 바위에는 3중으로 된 동심원이 4점이 있는데 중앙 상단에 1점, 상단 왼쪽에 1점, 하단 왼쪽에 1점, 하단 오른쪽에 1점이 있고, 십자형, 사람 얼굴을 추상화시킨 신상(神像)인 방패 모양의 그림 22점이 그려져 있다.
암각화를 통해 그 지역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는 형상을 알아볼 수 있는 그림이 237점으로 육지 동물과 해양 동물이 각각 97점과 92점인데 고래 그림이 62점인 것을 보면 그 지역이 지금도 그렇지만 바닷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의 동심원은 일반적으로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로 보지만 일부는 우물로 보는 이도 없지 않다.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 얼굴을 추상화시킨 신상(神像)은 머리카락과 수염 같은 털이 묘사되어 있고 그 안에 이목구비를 파서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으로 부적과 같은 의미로 농경사회의 신앙을 표현한 제단으로 보고 있다.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 면과 이어지는 적림산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채집되었다. 토기는 굽다리토기, 쇠뿔모양손잡이가 있는 초기 철기시대의 토기들이 나타났고, 석기는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마제석기를 비롯하여 쇠뿔모양의 석기와 숫돌 등이 발굴되었다. 이 중에 가장 많은 석기는 타제석기로 뗀석기이다.
암각화는 문자가 없던 시대에 바위에 새긴 것이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풍화작용으로 마모되고 있어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장기리 암각화는 보호 차원에서 아케이드를 설치하여 관리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남희 기자(Woo7959@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