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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을 구한 형제들 한천서원에서 만나다!! 한천서원에서 팔공산을 읽다.

등록일 2023년08월29일 13시31분
왕건을 구한 형제들 한천서원에서 만나다!!
한천서원에서 팔공산을 읽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서원과 향교를 들 수 있다. 향교는 공립교육기관, 서원은 사립교육기관이다. 대구지역에는 3개의 향교(남산동, 현풍, 칠곡)와 24개의 서원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달성군 관내에 현풍향교가 있고 서원은 대구 전체의 절반인 12개가 있다.  
본 지면을 통해 달성군 관내에 있는 서원을 재조명해 오고 있는데 가창 행정리에 있는 한천서원을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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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천서원은 가창면소재지를 지나 청도방면으로 직진하다 좌측 편에 행정리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길손을 반긴다. 행정리는 이 은행나무에 연유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행하지교(杏下之敎)라고, 공자님이 은행나무 아래 단을 설치해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의미에서 서원 앞에는 으레 은행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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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이 5백년이니 천 년이니 말들이 무성하다. 이러나 저러나 노거수임에는 틀림없다. 조선 헌종 때 숭절사(崇節祠)라는 사당을 창건하고 고려개국공신인 충렬공 전이갑(全以甲)과 충강공 전의갑(全義甲) 형제를 배향하였다. 대원군 때 서원이 훼철될 당시 위패를 땅에 매립하고 단(壇)을 만든 후, 한천재(寒泉齋)를 건립하였다. 1989년 한천서원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필자가 서원을 방문하였을 때 숭절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번호만 알면 열 수 있으련만. 행정리 마을회관을 찾아가다가 다행스럽게도 후손을 만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동수전투에서 싸우다가 순절한 충렬공 전이갑의 행적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건립한 고려태사시충렬전공순절비(高麗太師諡忠烈全公殉節碑)가 우뚝 서서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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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조선시대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중심건물은 강당과 사당이다. 정면에 한천서원이라는 간판을 단 강당이 있고, 강당의 오른쪽에 기숙사 한 채가 있고 다른 서원에서 볼 수 있는 장판각이나 증반소와 같은 부속건물이 없다. 사당은 필자가 보면 오른쪽이지만 강당을 기준으로 서쪽에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사당은 강당에서 쪽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고, 외삼문인 숭절문으로 들어와 내삼문을 거쳐 들어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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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 배향한 인물로는 앞서 말했듯 고려 개국공신인 전이갑·전의갑 형제다.  
충렬공 전이갑 선생은 본관은 정선(旌善), 호는 도원(桃源)이며 고려개국 벽상공신(壁上功臣)이다. 벽상공신은 정1품에 해당하는 공신들에게 내리는 호다. 육예(六藝)와 태공(太公)의 병법을 익혀 일찍이 기랑(騎郎)이 되어 궁예 막하의 왕건을 송악에서 만나 동벌서정(東伐西征)하고 송악에 발어참성(勃禦槧城)을 쌓고 유검필과 함께 상주의 사화진(沙火鎭)에서 견훤을 물리쳤다. 910년 금성포구에서 견훤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궁예가 악행을 저질러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자 신숭겸, 홍유, 배현경, 복지검 등과 함께 왕건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하였다.

1857년 철종 때 작성된 예조의 「수교문」에도 그 내용이 전해지는데 살펴보면
‘전이갑·전의갑 형제는 본래 기병으로써 궁예가 변심하는 것을 보고 신숭겸, 김락, 유금필, 복지겸, 홍유 등과 아무도 모르게 의논하고, 밤중에 태조의 처소에 가, 삼한이 분열됨으로써 도적떼가 사방에서 일어난다. 궁예왕이 도적들을 섬멸하고 초야에서 일어나 나라를 세우고 서울을 정하더니 잔악한 정치를 펴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 어두운 임금을 폐하고 밝은 임금을 세우는 것이 할 일이다. 은나라의 탕왕과 주나라의 무왕 같은 임금이 되어 달라’고 적혀 있다.

927년 견훤이 신라도성을 유린하여 도성을 초토화함에 따라 태조 왕건이 인솔하던 친정군(親征軍)이 원정을 간다. 하지만 팔공산 동수전투에서 왕건이 크게 패하고 신숭겸, 김락 등의 장수들이 전사하고 전이갑 또한 전사한다. 왕건은 전이갑 장군에게 개국공신 태사겸 상서좌복야 시충렬공 봉정선군(開國功臣 太師兼 尙書左僕射 諡忠烈公 封旌善君)을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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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갑 장군은 전이갑 장군의 친동생으로 팔공산 동수전투에서 형과 함께 왕건을 구하다 순절하였다. 충강공 전의갑 장군은 어렸을 때부터 이갑 형을 본받아 활쏘기를 비롯한 무예에 능하였다. 왕건 휘하에 합류하여 형과 함께 많은 전공을 세웠지만 앞서 언급하였듯 동수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여기에서 왕건이 견훤에 크게 패한 우리 지역의 공산 동수전투에 대해 정리 해보기로 한다.
918년 왕건이 태봉의 궁예를 몰아내고 건국하여 고려 태조에 오른다. 견훤이 신라지역을 침입하자 신라는 왕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왕건이 출정한다. 하지만 승전보를 울리며 퇴각하는 견훤군사에게 원정 온 왕건은 세 차례나 패하며 신숭겸, 김락 장군 등 많은 신하들을 잃게 된다.
지난 5월 팔공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팔공산은 공산을 이르는 말이다. 왕건과 견훤과의 전투가 공산에서 일어나 공산전투 또는 동수전투라고 불리는데 왕건이 크게 패해 8명의 장수가 전사하였다. 이를 기린다는 뜻에서 팔공산이라고 했다. 동구에 가면 불로동, 실왕리, 연경, 지묘동, 왕산, 무태, 안심, 반야월 등 왕건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동수전투는 홍성의 운주대전, 안동 병산대전과 더불어 후삼국 통일전쟁의 3대 전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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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강당의 이름이 별도로 없고 한천서원이라는 현판이 강당의 정면에 걸려 있고 여러 편액들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이 중봉 조헌 선생의 칠언절구 ‘팔공산 전장(八公山 戰場)’이란 시다. 팔공산 전장이라 함은 동수전투를 이름이다.

오동나무 숲에서 초군과 싸웠다 (桐藪何年戰楚軍 동수하년전초군)
동문에서 목숨 바쳐 한왕을 구했네(東門一死漢王奔 동문일사한왕분)
분명히 기신에게는 유방이 있었네 (分明紀信在劉邦 분명기신재유방)
비유하건대 현무의 공훈과 같구나( 錯比顎公玄武勳 착비악공현무훈)

향사는 서원마다 조금씩 날짜가 다른데 이곳 한천서원의 춘향(春享)은 유림이 주관하여 매년 3월 10일에, 추향(秋享)은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음력 9월 15일 후, 둘째 일요일에 봉행하고 있다. 이때 100여 명의 후손들이 참석하여 두 형제의 뜻을 기린다.

 서원 마당에는 커다란 돌이 있다. 사단법인 대구문화유산에서 만든 표지판을 보면 ‘한천서원 지석묘’라고 쓰여 있다. 이 표지판은 서원과 사당의 경계인 담 앞에 있다.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지배계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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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리 노인 회장을 맡고 있는 전훈열 후손은 “우리 서원이 제향 기능만을 해 왔는데 요즘에는 전통문화교실과 예절교육이 서원에서 이루어져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많이 찾아오고, 유림과 후손들이 향사를 지내고 있으니 서원의 기능인 강학과 제향이 재현되고 있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마을이 활기찬 것 같아 좋다. 우리 서원이 항시 개방되어 누구나가 관람할 수 있게 하여 배향된 두 형제의 충절의 정신을 기렸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참고자료: 대구지역 서원 현황조사결과보고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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